지난 금요일은 삼일절로 지켰다. 금년은 삼일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외치다 목숨을 잃었고, 또 많은 고초를 겪었다. 나라를 사랑한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
스위스 중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루체른에는 유명한 조각상이 하나 있다. ‘빈사의 사자상’ 이다.
‘빈사의 사자상’이란 죽어가고 있는 사자상을 말하는데, 회색빛 사자가 등에 창이 박힌 채 마지막 순간까지 부르봉 왕가 상징인 흰 백합의 방패를 지키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사자상에는 그 당시 전사한 786명의 스위스 병사 이름이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새겨져 있다. 이 사자상은 덴마크의 유명한 조각가 토르발트젠(Thorwaldsen)이 1821년 조각한 기념상으로서 1792년 파리 튈르리 궁전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를 보호하려다 죽은 786명의 스위스 용병을 추모하기 위해 바위에 새긴 조각이다. 스위스가 지금은 매우 부유한 나라, 평화로운 나라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옛날부터 잘 살았던 것은 아니다. 국토(41,000㎢)의 25%만이 경작 가능하고 나머지가 알프스 산맥과 쥬라 산맥, 그리고 호수로 이루어진 산악국가인 관계로 식량이 부족하여 수백 년 전부터 용병으로 팔려다녔고 이민을 가야만 했다. 가난했던 스위스 시절, 스위스 용병들은 세계에서 가장 용맹한 것으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스위스 용병의 충성심을 세계만방에 알린 유명한 사건이 있다. 프랑스 대혁명 때, 혁명군이 궁으로 몰려오자, 스위스 용병들은 루이16세와 왕족들을 보호하다가 26명의 장교와 760명의 사병 전원이 목숨을 잃는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호위병은 프랑스 병사들뿐만 아니라 스위스 용병을 비롯한 외국 용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혁명군이 몰려오자 대부분의 호위병들이 도망쳤는데, 스위스 용병들만은 끝까지 루이 16세 곁에서 왕을 호위하였다. 더 이상 왕위를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한 루이 16세는 남아 있는 스위스 용병들에게 “너희는 프랑스와 아무 상관이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용병을 지휘하던 스위스 장교들이 긴급회의를 열었는데, 결론은 이것이었다. “우리 스위스 군대는 한 번 지킨 신의는 끝까지 지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을 지키기 위해 혁명군과 항전을 벌였고, 그 결과 786명의 용병 모두가 죽고 말았다. 이런 스위스 용병의 충성심을 알기에 바티칸에서는 지금도 스위스 군대에 방위를 맡기고 있다. 또 하나 충성에 대한 좋은 사례가 있다. 영국 런던의 ‘National Gallery’라는 미술관에는 콘트티라는 화가가 그린 <충성>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다. 주후 79년 이탈리아 폼페이 근처에 있는 베스비어스 산에서 화산이 폭발해 폼페이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다. 18세기중엽 폼페이 발굴 작업을 하던 중, 발굴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화석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폼페이 성문을 지키고 있던 한 보초병의 화석으로 화산이 폭발하면서 폼페이가 불바다가 되었을 때, 성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성을 빠져나가기에 바빴음에도, 보초병은 용암이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동자세로 창을 굳게 잡은 채 성문을 지키다가 용암을 온 몸에 뒤집어쓴 채 그대로 화석이 되어버렸다. 이 병사를 모델로 해서 그린 그림이 바로 <충성>이라는 작품이다. 충성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스위스 용병들이나 보초병처럼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가운데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끝까지 사명을 지키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께서도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바로 그러한 충성된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대하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