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음악작품을 남긴 음악가가 있다면 요한 세바스찬 바하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음악가로서는 누구보다 위대했는데, 그러나 그의 생애는 견딜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고난과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 바하는 1685년 3월 23일 독일 투링기아주 아이센나흐에서 태어났는데, 음악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헨델보다 2주일 늦게 출생했다. 10살도 되기 전에 그는 부모님을 여의었다. 그래서 형이 바하를 키웠는데, 자기도 먹고 살기 힘든 형편에 동생을 돌보다보니 바하를 몹시도 미워했다. 장성한 후에도 바하의 고난은 계속되었다. 마리아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7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레오폴드 후작과 외국에 연주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장례를 치룬 후였다.
얼마 후, 바하는 안나 마트달레나라는 여인과 재혼을 하게 되어, 첫째 아내의 자녀들을 포함해 아들 11명, 딸 9명 등 모두 20명의 자녀를 두게 된다. 그런데 가슴 아프게도 20명 가운데 한 두명도 아닌 10명의 자녀들이 어려서 죽고, 한 명은 20살 때 세상을 떠나고, 또 한 명의 자녀는 정신박약아로 태어났다. 거기다 노년에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까지 되었다. 바하의 가정이 얼마나 극빈했냐면 그의 둘째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서 빈민구제위원회에서 장례를 맡아 치를 정도였다. 이렇게 인간으로서 최악의 고난을 겪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인생의 고난을 더 깊고 크게 체험한 그 역경 때문에 바하는 위대한 작품을 남길 수가 있었다. 고난이 위대한 바하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바하에겐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하는 늘 이렇게 말했다.
“음악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 영혼의 소생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바하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작곡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그래서 그는 작곡을 할 때 악보 공란에 ‘J. J.’(Jesu Juva, 예수님 도와주소서), 또는 ‘I. N. J.’(In Nomine Jesu, 예수 이름으로)라고 표시하곤 하였다. 칸타타나 오라토리오의 마지막 부분에는 항상 S.D.G. 라는 글자를 적어 놓았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Soli Deo Gloria!) 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의 첫 번째 글자들이다. 또한 오르간을 위한 합창 전주곡들은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께’ (The most High God!) 바치는 곡이라고 적어 놓았다. 무시무시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음악을 하였는데, 그것이 그의 삶의 의미요 진정한 목적이었다.
1750년, 그의 나이 65세에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침대에 누워 받아쓰게 한 마지막 작품 역시 ‘당신의 보좌 앞으로 나는 갑니다’(Before Thy Throne I Come)라고 명명된 하나님께 올리는 합창곡이었다.
바하의 마음속에는 온통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위대한 작품을 남기느냐였다. 그것이 바하의 깊은 고난과 어우러지면서 인류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킨 배경이 되었는데, 바하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마태수난곡도 바하가 극한의 고난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곡이었다. 고난이 바하의 믿음과 작품을 더욱 깊고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바하를 볼 때도 알 수 있는 것은, 고난이 괴롭고 견디기 힘들지만 돌아보고 나면 그 고난이 은혜이고 축복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