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에 가는 길’
호레시오 게이츠 스파포드 (Horatio Gates Spafford)는 19세기의 욥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아픔을 겪었던 사람이다. 그는 1828년 미국 뉴욕 주에서 태어나서 변호사, 법의학교수, 주일학교 교사 등 다방면으로 활동을 한 신실한 성도로, 당시 부흥사였던 무디와 여러 전도자들의 친구이자 후원자이기도 했다. 1871년 스파포드가 43세였을 때, 전 재산을 투자해서 시카고에 호화로운 별장을 지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시카고 전역에 대화재가 일어나서 그의 별장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크게 상심한 아내와 네 딸을 위로하기 위해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계획했는데 그에게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그가 법정관리를 하고 있던 무디의 교회가 시카고 대화재 때 다 타버렸기 때문에 그 잔무를 처리하느라고 아내와 네 딸만 1873년 11월 15일, 프랑스 여객선에 태워 먼저 보냈다. 그 자신은 다음 배로 유럽에서 가족과 만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난 지 일주일 만인 22일 새벽, 아내와 네 딸이 탄 여객선은 영국의 철선 로션(Lochearn)호와 정면으로 충돌해 단 30분 만에 대서양에 가라앉고 말았다. 그 사고로 226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희생자들 속에 그의 네 딸도 포함되어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그의 아내는 구조되어 웨일즈로 이송이 되었다. 꿈에도 그런 비극을 생각하지 못한 채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서 바쁘게 짐을 꾸리고 있던 중에 그의 아내로부터 전보가 날아왔다. 그 전보에는 ‘saved alone. what shall I do’(혼자만 구조되었어요. 어떻게 해요.)라고 쓰여 있었다. 그 비보에 망연자실했지만, 급히 배를 타고 구조된 아내에게로 출발했다. 가는 내내 견딜 수 없는 슬픔에 식음을 전폐하고 갑판 위에 머물러 있었다. 사고 지점에 이르렀을 때, 배의 선장은 이곳이 그가 딸들을 잃은 곳임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는 네 딸들을 생각하며 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통곡하였다. 그리고는 선실로 돌아와 시편 23편을 펴서 읽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그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아 스파포드는 감사의 고백을 5절까지 단숨에 써 내려갔다.
그 감사 찬양시가 바로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이다. 그는 이 찬양시를 1876년 무디와 블리스가 그를 방문했을 때 블리스에게 작곡을 부탁하였고, 블리스는 1876년 11월 마지막 금요일 시카고의 한 홀에 천명 이상의 사역자들이 모인 집회에서 이 곡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 원 가사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내 가는 길에 평안이 강 같을 때나 슬픔이 험한 바다 물결 같을 때에도, 그리고 내 운명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내 영혼 평안해’라고 말할 수 있도록 가르치신다.” 스파포드는 견딜 수 없는 큰 시련과 고난을 겪었음에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다. 자신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섬기고자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서, 1888년 죽을 때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였다. 그가 시작했던 봉사 단체는 ‘스파포드 어린이 센터’가 되어 지금도 중동지역에서 해마다 2만여 명의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항상 순풍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큰 풍파도 있고 역풍도 있다. 그럴 때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고난 속에도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은 어떠한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하늘나라에 가면 그 고난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면서, 감사로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