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도 비옥한 땅이 될 수 있다.
나는 숲 속에서 긴 밤을 보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간절히 부르짖었다. 가야 할 방향과 깨달음, 도움과 출구를 구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이 숲 속 어딘가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라도 보여 달라고 기도했다. 발자국이라도, 부러진 잔가지 하나라도, 뭐라도 좋으니 하나만 보여 주시라고.
분명 내 상태는 매우 우울했고 지나칠 만큼 외로웠다. 과연 난 하나님께 귀 기울인 걸까? 이윽고 뭔가가 들려온, 아니 들었다고 생각한 그날은 과연 귀 기울이기에 적합한 날이었다. 눈이 15센티미터도 넘게 내려서 제법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는 뒷마당을 걷다가 잠시 멈춰서, 발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모든 것이 눈에 덮여 버렸다.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마치 온 세상이 내게 자리를 내주려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선 것 같았다. 자유로이 생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나만의 공간을 남겨 둔 채...
발아래 초록 빛 뭔가가 보였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 눈밭을 뚫고 작은 초목이 마치 푸른빛을 지키려 몸부림을 치는 것 같았다. 두 계절이 같은 땅을 놓고 싸우는 것 같았다. 봄은 태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겨울은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뭐랄까, 마치 나를 위한 한 편의 비유처럼 보였다. 곧 비유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진리의 알맹이가 튀어 나왔다. 내 안에서도 뭔가가 태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있었다. 두 가지가 동시에 내 안에 있었다. 겨울과 봄이 싸우고 있었다. 한 계절이 시작되려면 반드시 다른 계절이 끝나야 한다. 새로운 시작. 나는 그것을 느꼈다. 내 안에서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얼었던 땅이 꿈틀댄다. 씨앗이 힘을 얻어 막 싹트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울함은 영혼이 땅속에 묻히는 것과 같다. 우리 영혼은 차갑고 어두운 고독 속에서 말없이 홀로 기다린다. 어서 봄이 오기를 … . 햇살의 따뜻함,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우정을 나눌 날을 기다린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이날 내가 배운 것은 우울함이 한 알의 밀이 떨어지는 캄캄한 땅속도 되지만 열매를 자라게 하는 비옥한 토양도 된다는 것이다.
그 땅에서 맺힌 열매는 무엇일까? 인생이라는 건, 심지어 나 자신의 삶조차, 내 맘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쓰라린 깨달음이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자신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삶에 닥쳐오는 폭풍을 어찌할 수 없다. 어떤 때는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필사적으로 견디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 우울의 땅에서 자란 것이 또 있다면 남의 입장이 돼 볼 수 있는 마음, 예전에 가져 보지 못한 이해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눈물을 통해 나는 그리스도의 슬픔의 자락을 만질 수 있었다. 아주 잠깐, 그것도 옷자락 한 구석에 살짝 손을 댄 것뿐이지만, 주님이 이 땅을 걸을 때 짊어지신 슬픔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 조금의 이해로 더 깊은 사랑이 찾아왔다.
- 켄 가이어 [울고 싶은 날의 은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