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동쪽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누리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 타락의 길로 빠져듭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피해 나무 사이로 숨어버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창조주로부터 소외된 것입니다. 하와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창세기 2:23)이라고 불렀던 아담은 하와가 꾀어 선악과를 먹었다고 원망합니다. 인간관계가 단절되어 서로 소외된 것입니다. 하와는 뱀이 꾀어서 먹었다고 핑계합니다. 자연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인간이 자연으로부터도 소외되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된다(창세기 3:5).’ 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것인 선악과를 내 것으로 소유하려는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바른 관계를 거부하고 인간의 주체성과 자기완전성(自己完全性)을 내세우는 독립선언,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를 모두 깨뜨렸습니다. 실낙원(失樂園)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관계의 단절과 소외가 곧 실낙원입니다.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가인이 대답합니다.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가인은 ‘소유한다’는 뜻입니다. 혈육의 관계가 단절된 자리에 소유욕이 들어앉았습니다. 가인은 에덴의 동쪽 ‘놋’이라는 땅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놋은 히브리어로 ‘헤매다, 방황하다’는 뜻입니다. 올바른 관계성을 잃어버린 삶은 목표를 잃은 방황의 여정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한 인간의 자의식은 두렵고 불안한 가운데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미움과 투쟁, 시기와 갈등의 대상이 됩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고, 이삭은 이복동생 이스마엘과 결별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 원수가 되었고, 요셉의 형들은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이 모든 인간관계의 패륜적 파탄이 실낙원의 실체입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라는 책을 썼는데, 그것은 곧 ‘소욕이냐 관계냐’라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에덴은 관계성이 충만한 곳이요, 에덴의 동쪽은 소유욕이 충만한 곳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관계성을 회복하는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분명하고 간결하게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가복음 12:30~31).” 관계의 상실은 사랑의 상실이요, 관계의 회복은 사랑의 회복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출처] 에덴의 동쪽(극동방송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