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인생 서울 등촌동에 가면 실로암안과 병원이 있다. 그 병원은 시각장애인들의 빛을 되찾아주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데, 그 병원의 원장은 김선태(79) 목사이다. 실로암 병원은 그에 의해 1986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4만 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개안수술을 해주었다. 개안 수술이란 백내장, 녹내장, 각막질환 등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수술이다. 앞을 못 보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 준, 김선태 원장은 놀랍게도 시각장애인이다.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 1급임에도 그는 갖은 역경을 극복하고 34년 간 실로암 병원을 운영해 오고 있다. 그의 삶은 끝없이 깊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1941년 9월, 서울 신당동에서 경주 김씨 가문의 3대 독자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그런 그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닥치게 되었는데, 10살 때 6.25전쟁이 터졌다. 그 전쟁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전쟁이 발발한지 열흘 째 되던 7월4일, 친구들과 놀러갔다 온 사이에 집이 폭격을 맞아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부모님의 시신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폭격이었다. 그런데 그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거지 신세가 되어 여기저기 구걸하며 다니던 8월 어느 날, 친구 8명과 함께 뚝섬으로 수박 서리를 하러 갔다. 거기서 불발 수류탄을 만지다 터지는 바람에 같이 있던 8명의 친구들은 그 자리에서 죽고 그만 간신히 살아나게 되었다. 그 사고로 그는 두 눈을 잃고 말았다. 시각장애인이 된 것이다. 10살의 나이에 부모도 잃고, 친구도 잃고, 두 눈도 잃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목숨이 붙어있기에 그는 살아야만 했다. 산 넘고 물을 건너 20일 만에 100리 길을 걸어 경기도 광주에 살고 있는 고모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혹독한 매질과 학대였다. 얼마나 심하게 매를 맞았던지 지금도 그의 몸에는 60년이 넘었지만 60군데의 상처가 남아있다. 그러던 그해 겨울, 더 이상은 고모네 집에 있을 수 없어서 엄동설한에 피난길을 떠나게 되었다. 몇 년을 거지로 생활하며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그러던 중에 곽안전 선교사를 만나 숭실중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당시 시각장애인은 대학에 입학할 수가 없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숭실대를 졸업하고 장로교 신학대학원을 마친 후, 미국 매코믹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부모를 잃고 또 두 눈을 잃은 후부터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숱한 역경과 위기를 그는 믿음으로 이겨냈고, 또 끝없는 인내심으로 참고 참아냈다. 그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순교의 각오로 땀을 바치고 눈물을 바쳐 목숨 걸고 공부했더니,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고 말을 한다. 10살 때부터 겪은 그의 고난과 눈물은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나다. 그러나 그는 어떤 형편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믿음의 힘으로 극복해냈다. 그도 인간인지라 여러 차례 못쓸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앞을 못보는 장애인들을 위해 평생을 살기로 목표를 세웠고, 그 일을 위해 실로암 병원을 세운 것이다. 비록 자신은 앞을 볼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앞을 못 보는 맹인의 눈을 뜨게 해준 실로암(보냄을 받았다)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개안수술을 해 준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수십 년을 실로암 인생으로 살아왔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는 실로암 사역을 위해 보냄을 받았다고 믿고 자신의 삶을 통해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이 땅에 무엇을 위해 보냄을 받았는지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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