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비비어의 ‘순종’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상에서 하나님의 덮으심 아래 자유와 보호를 누렸다. 그러나 불순종하는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여 벗어버린 바로 그것, 즉 “자신을 덮을”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권위에 불순종함으로 인류는 한때 알던 귀한 자유와 보호를 잃어 버렸다.” 존 비비어의 순종의 한 구절이다. 인간이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위에 복종할 수 있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권위부터 만나야 한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그 권위를 만났는지 여부로 규정된다. 순종의 책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1년간 목사의 행정 비서로 섬기던 시절 내가 이의를 느낀 결정이 많았다. 나는 목사가 내 책상을 거쳐 부서장들에게 전달하는 많은 지시 사항을 보았다. 목사의 결정이 현명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투덜대다, 어느 날 성령께서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셨다. 나는 하나님이 내게 질문을 던지실 때면 내 어쭙잖은 지혜를 지적해 주시려는 것임을 여러 번 경험했다. “예, 주님?” “내가 목사의 자리에 둔 사람이 누구냐?” “너냐 그 사람이냐?” “목사님입니다.” “맞다. 그러므로 나는 너 한데는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그 사람 한데는 보여 줄 것이다. 그리고 목사의 결정에 담긴 지혜를 너 한데는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 목사가 나를 따르듯 네가 그 목사를 따르는지 보기위해 서다.”(p197) 하나님의 나라의 권위는 은사가 아니라 직분을 통해 내려온다. 눈에 보이는 권위에 순종하는 연습은 제자도의 중요한 훈련이다. 교회 안의 거짓 지도자는 두 가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첫째, 성경에 맞지 않는 교리를 가르친다. 둘째, 거짓 지도자들은 교회 내에서 자기 스스로 일어난다. 어느 목사님이 말했다.
‘진정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면 하나님의 권위가 머무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식별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권위를 아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양인 사람과 주님의 양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주님의 음성이 들으면 주님의 양이고, 듣지 못하면 주님의 양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이 ‘들으며’ 하는 말씀은 더 정확히 말하면 ‘순종하느냐?’ 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결론을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로 맺으신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자녀들에 대하여 ‘말을 잘 듣는다, 말을 안 듣는다.’ 할 때, 그것은 청각기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대하여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귀로 들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목자의 음성으로 듣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귀신들려 미쳤다’고도 했다. 마음에 의혹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돌로 치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그들이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인지 여부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알 수 있다. 요8:46-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중에도 주님의 말씀을 깨닫기는 하는데 순종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조심해야 한다. 불순종은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순종의 연습은 하나님이 세우신 나의 리더에 대한 권위에 대한 따름이다. 주님은 납득이 아니라 순종을 요구하신다. 때로는 나의 상식과 대비되어도, 영문을 몰라도 겸손과 때로는 복종을 기대하신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교회의 원리다.
-담임목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