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존 번연(John Bunyan)이 쓴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은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크리스천의 삶의 역정을 간결한 언어와 풍부한 관찰로 그려낸 신앙의 명저입니다. 저명한 평신도 설교자였던 존 번연은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과 함께 17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힙니다. 청교도 혁명에 가담한 존 번연은 왕정이 복고되자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는데, 국교인 성공회를 제외한 모든 종교활동을 금지하는 국왕 찰스 2세의 집회금지령을 어기고 평신도설교를 계속하다가, 두 번째로 체포되어 12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때 저술한 책이 바로 천로역정입니다.
<천로역정>은 <넘치는 은총> <거룩한 전쟁> 등의 저서와 함께 영국 신앙계에 깊은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독일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등 각국어로 번역되어 유럽의 개신교계에 널리 퍼져나갔고, 지금까지 120여 외국어로 번역되어 크리스천의 필독서로 읽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895년 캐나다 선교사인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목사님의 한국어번역으로 처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존 번연이 왕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혀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간수가 번연에게 "아무도 몰래 집에 가서 부인과 아이들을 만나보고 돌아오라"고 말하며 감방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것은 간수에게 매우 중대한 범죄였지만, 평소 번연의 활동과 설교와 인격을 깊이 신뢰하고 있던 간수는 그가 반드시 감옥으로 돌아오리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옥문을 열어준 것입니다. 번연은 크게 고마워하면서 집으로 가다가, 도중에 감옥으로 다시 돌아와 간수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호의는 고맙지만, 이것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번연은 다시 감방에 들어갔습니다. 부당한 죄목으로 부당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국법을 지키는 것이 크리스천으로서 바른 행동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두 시간 후에 국왕이 감옥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감옥을 시찰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만약 번연이 집으로 갔다면, 간수도 죄수도 모두 목이 달아났을 것입니다. 국왕이 돌아가자 간수는 번연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선생님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기 때문에 선생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저도 이제부터 성령의 인도하심만 따라 살아가겠습니다. 성령의 감화가 그 간수에게 임한 것입니다.
존 번연은 책만 쓴 작가가 아닙니다. 그의 삶 자체가 천로의 역정 곧 하늘나라로 나아가는 밝은 길,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성도의 길이었습니다. 삶의 노정에는 숱한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그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내 욕망을 따를 것인가, 성령의 인도를 따를 것인가, 그 결단에 천로역정의 성패가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