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엘을 내보내라’
몇 년 전에 <127시간>이라는 영화로도 나온 실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아론 랠스톤'이라는 등반가가 2003년 4월 미국 유타주에 있는 큰 산을 올라 등반하다가 그 산에서 미끄러져 내려서 협곡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미끄러질 때 돌도 같이 무너져 내려서 피하는데 손이 찧었습니다. 이 위에 큰 바위가 얹혀진 것입니다. 뼈가 으스러지고 피가 나는 것 같아도 문제는 빠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협곡에 혼자 쓰러져 있는데 3일을 그냥 지냅니다. 이 팔을 빼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3일을 꼼짝없이 이 바위에 눌려있는 것입니다. 힘이 점점 빠져가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았습니다. 누구도 자기가 여기 있는 것을 알지도 못합니다. 결국은 그 사람이 결심을 합니다. 자기 팔목을 입과 다른 한 손으로 동여매고 그리고는 등반용 칼로 팔목을 절단했습니다. 보통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는 힘이 더 빠지기 전에 이렇게 끊고라도 자기 생명을 살려야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그가 거기서 구조를 받습니다. 끊어버려야 될 것이 있으면 분명히 끊어버려야 됩니다. 우리에게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 같지 않지만 죄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스마엘입니다. 이스마엘이 뭔가?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생각입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는데도 그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와 함께 자기 마음대로 하갈과 사이에서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것의 결과이고 상징입니다. 예수님을 정말 구주로 영접했다면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았던 것을 주님 앞에 다 꺾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오기 전에 이스마엘 하나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짜 약속의 아들인 이삭이 왔습니다. 그러면 이스마엘은 보내야 되는 겁니다. 이 아브라함의 가정에 일어났던 일은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님의 생각이 있고 육신의 생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스마엘을 내보낸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스마엘을 내보낸다는 것은 “하나님, 이제는 내가 내 마음대로 살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결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제부터는 내 마음대로 살지 않겠습니다. 가정 일이든 직장 일이든 교회 일이든 내가 어떤 일이든지 아무리 그것이 옳아보여도 하나님 내가 이제부터는 내 마음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만, 겉으로만 예수를 믿으면서 내가 주인 노릇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내가 예수 잘 믿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내가 주인일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는 결코 주님의 역사를 이루지 못합니다. 기적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정말 이제는 네 마음대로 살려고 하지 않기로 결단을 했느냐?’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는 말은 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