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무게
30년 동안 영국 연극무대에서 예수님 역할만을 맡아온 안톤 레이지라는 유명한 배우가 있었다. 어느 날 미국의 여행객 부부가 연극 연습장을 방문했다. 무대 위에 십자가가 놓여있었는데, 갑자기 부인의 마음속에 남편이 십자가를 지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을 기다렸다가 부부는 십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내 부인이 사진기를 꺼내들고는 남편에게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하였다. 남편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십자가를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모형 십자가인줄 알았는데 그 십자가는 무거운 통나무로 만든 진짜 나무 십자가였던 것이다. 십자가를 가지고 끙끙대고 있을 때 안톤 레이지가 부부 곁으로 다가 왔고, 부인이 그에게 물었다. “이것은 연극일 뿐인데 왜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사용하나요?” 그러자 그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만일 내가 십자가의 무게를 전혀 느끼지 않고 흉내만 낸다면, 나는 예수님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멘다고 십자가의 고통을 진짜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보통 사람이 들기 어려운 무거운 통나무 십자가를 사용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지신 십자가 역시, 통나무로 만든 무거운 십자가다. 십자가 형틀의 세로 나무를 ‘스티페스’라고 하는데 40kg 정도 된다. 가로 나무는 ‘파티불룸’이라고 하는데 30kg 정도 나간다. 합치면 70kg의 무게로 쌀 한가마니 정도가 된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800m되는 거리를 지고 올라가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셨기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던 것이다(마 16:24). 어떤 사람이 ‘자기의 십자가가 너무 무겁다, 불공평하다’고 하나님께 항의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을 듣고 그를 요단강가로 불렀다. 요단강을 건너야만 천국에 들어올 수가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십자가를 지고 강을 건너왔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저들이 지고 온 십자가의 무게를 달아 보아라” 그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십자가를 모두 달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큰 십자가도 작은 십자가도 그 무게가 똑같았던 것이다. 그 사람이 의아해 하나님을 쳐다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십자가를 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감사함으로 지고 가지만, 어떤 사람은 온갖 불평하며 지고 간다. 나는 공평하게 주지만 저마다 다르게 십자가를 대하는 것이 그들이 느끼는 무게의 차이니라.”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는 가볍게 생각한다. 반대로 나의 십자가는 너무도 크고 무겁게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십자가는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십자가이다. 외적으로 볼 때 혹시 차이 나게 보일지는 몰라도 질적으로는 똑같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는 공평한 십자가를 부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큼의 십자가를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에게나 십자가가 있다. 그 십자가를 감사함으로 지고 갈 때 십자가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지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다. 만약 내게 주어진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져, 내려놓거나 포기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골고다의 십자가를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도 십자가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다. 우리 역시 십자가를 져야만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고 영광이 있다. 주어진 십자가를 감사함으로 지고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