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봉
아프리카 끝자락에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서쪽 끝을 이루는 곶이며 해발 256m 높이의 산으로 남아공 최고 관광지인데, 케이프타운에서 약 50km 거리에 있다. 일반적으로 희망봉이 아프리카의 최남단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최남단 지역은 희망봉에서 동남쪽으로 150㎞ 떨어진 곳에 있는 아굴라스 곶(Cape Agulhas)이다. 원래 희망봉의 이름은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었다. 희망봉의 발견은 중세 유럽의 역사를 바꾼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는데, 당시 유럽인들은 향신료와 보석으로 가득한 인도로 가는 해로 개척에 열을 올렸었다. 1487년 8월, 3척의 선단을 이끌고 포르투갈 항해가인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인도항로 개척을 위해 출발하여 5개월 뒤인 1488년 1월, 케이프타운 남쪽 끝에 위치한 희망봉을 발견한 뒤 ‘폭풍의 곶’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서양과 인도양의 한류와 난류가 충돌하면서 늘 성난 파도가 일고 강풍이 불기 때문에 ‘폭풍의 곶’으로 명명한 것이다. 이름처럼 이곳을 지나가는 배들은 폭풍이 얼마나 거세고 험악한지 무사히 지나간 배가 드물었다. 지금도 희망봉이 위치한 케이프타운은 겨울 같은 경우, 사람도 실려나갈 정도로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다.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발견한 뒤, 10년이 지난 1498년 바스쿠 다가마가 이 곶을 통하여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게 되자, 포르투갈 왕 주앙 2세는 ‘폭풍의 곶’이라는 이름이 부적합하다고 여기고는 ‘Cabo da Boa Esperana’(희망의 곶)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희망봉’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항해에 나서는 선원들의 공포를 덜어주기 위해 ‘희망봉’이라는 새 이름을 짓게 된 것인데, 그 후 몇 백년 동안 희망봉은 말 그대로 선원들의 ‘희망’이 되었다. 절망의 땅이 희망의 땅으로 바뀐 것이다. 단지, 이름만 바뀌었을 뿐인데 항해에 임하는 선원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실제로 인도에서 향신료를 싣고 몇 달 내내 파도와 싸우던 선원들에게 이 희망봉은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게 되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망과 희망은 언제나 공존하기 마련인데, 고난을 어떤 자세로 맞이하느냐,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인생은 달라진다.
영국의 역사 비평가 칼라일은 ‘절망이란 약한 자에게는 장애물이지만 강한 자에게는 징검다리’라고 말한 바 있다. 전에 ‘한판승의 달인 이원희 선수’의 인터뷰를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유도경기에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고서도 한판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딴 후, 기자회견을 했을 때, “부상으로 고통스러웠을 텐데 무통주사를 왜 안 맞았느냐”고 기자가 질문하자 그는 “정신력으로 이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변화의 고통도, 실직의 아픔도, 경제적 어려움도 가정의 위기도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극복할 수가 있다. 환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폭풍 대신 희망이라고 바꾼 희망봉처럼, 희망은 살아갈 힘이 되고 극복할 능력을 가져다준다. 희망의 자락을 놓지 않는 한 절망은 없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것은 환경에 있지 않고, 환경을 대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 그래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절망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우리에게 힘주시고 능력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다. 지금 코로나 사태로 많이 힘들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이 역경을 이겨나가자. 폭풍의 곶이 희망봉이 되는 기적을 꿈꾸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전진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