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를 위해
드와이트 무디(1837-1899)는 조나단 에드워드와 함께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무디는 4세 때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가 17세 되던 해에 고향을 떠나 외삼촌이 살고 있는 보스턴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 무디는 외삼촌이 운영하는 구둣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외삼촌의 강권에 못이겨 매주 교회에 나갔다. 여기서 무디의 생애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될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가 바로 에드워드 킴볼이다. 당시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던 킴볼은 헌신적인 교사로, 자기 반 아이들이 예수님을 좀 더 깊이 알도록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의 반에 무디가 출석하게 되었다. 어느 날, 킴볼이 요한복음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거의 문맹이었던 무디는 창세기를 펴들었다. 너무 무안하고 자존심이 상하게 된 무디는 다음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킴볼 선생님의 설득으로 다시 교회에 나오게 된 무디는 킴볼 선생님이 매주 글을 가르쳐주는 헌신적인 도움으로 1년 뒤에는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디의 영혼을 걱정하던 킴볼 선생님은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무디가 일하는 구둣방으로 찾아왔다. 조용히 무디의 어깨를 짚고는 “무디야! 나는 주님께서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이야기하고 싶구나. 무디는 예수님을 영접한 체험이 있니?” “글쎄요.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고, 지금도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내 말은 네가 개인적으로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적이 있는가를 말하는 거야. 나는 너의 영혼을 두고 기도를 많이 했단다. 오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겠니?” 킴볼 선생님의 이 말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젖어 있던 무디의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날 무디는 죄악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여 자신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았다는 확신을 경험하게 되었다. 훗날 무디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 사함 받은 날 아침, 밖으로 나가 만물을 보았습니다. 태양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지저귀는 새소리도 내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는 구원의 감격에 즉시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어머니, 기뻐해 주세요. 1837년 2월 5일은 제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생일이지요? 18년이 지난 오늘 4월 21일은 성령으로 제 영혼이 거듭난 생일입니다.” 그렇게 거듭난 후, 무디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복음을 증거 하였는데 매일 최소한 한명의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결코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40년 동안 영국과 미국에서만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 무디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3개의 학교를 세웠고, 라디오와 TV가 없던 시대에 1억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무디가 이렇게 위대한 부흥사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주일학교 시절 킴볼 선생님의 헌신적인 가르침과 그가 보여준 위대한 사랑 덕택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한 헌신된 교사가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무디가 될 수는 없어도 킴볼은 될 수가 있다. 지금 코로나 사태로 오랜 기간 현장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어서 학생들의 영혼이 무척이나 걱정된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위해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들의 신앙을 돌아보며 더욱 사랑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교회 안에 또 다른 무디, 빌리 그래함, 폴 워셔같은 위대한 영적 거장이 나오게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