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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구유 그리고 마음 문

말구유 그리고 마음 문

 

고향 가는 길에 잠시도 머물 곳이 없었던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 시골여관의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님을 낳습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에 억압당하는 식민지 유대의 백성이었을 뿐 아니라, 유대인 중에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민초들이었습니다. 그 마구간에 있던 말들은 고삐에 매여 자유를 잃어버린 채 허구한 날 채찍 맞으며 달려야 하는 가련한 짐승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누우신 말구유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리, 억압받고 자유 없는 비참한 자리입니다. 가난과 소외, 억압과 부자유의 비천한 자리인 마구간 말구유에서 구세주가 탄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신 말구유는 일부 정치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권력자과 자본가에 저항하는 민중해방의 자리가 아닙니다. 계급투쟁이나 민중혁명의 근거지도 아닙니다. 말구유의 가난과 소외, 억압과 부자유는 모든 인간 영혼이 처해있는 실존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있는 인간은 가난하고 소외된 영혼일 뿐 아니라 현세적 기복(祈福)의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가 스스로를 억압하는 부자유한 실존입니다. 말구유처럼 비천한 인간 영혼의 어두운 자리에 메시아가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들 자신의 몫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리라.“

(요한계시록 3:20) 주님은 지금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철학자 헤겔은 "마음 문은 안에서만 열린다"고 지적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우리의 마음 문을 열어드릴 것인지 아닌지, 우리는 스스로 결단해야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대심문관인 추기경은 재림한 예수를 옥에 가두고 꾸짖습니다. "그대는 이미 기독교를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기독교는 이제 그대의 것이 아니라 교황과 사제들의 것이다. 가라. 다시는 오지 말라."

추기경은 예수님에게 마음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마음 문을 꼭꼭 닫아걸었습니다. 그 사제는 신앙인이 아니라 그저 종교의식으로 먹고사는 삯군이요 직업종교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리라는 것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던 사람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습니다(마태복음 2:1~12). 예수님에게 마음 문을 열지 않은 것입니다. 마음 문을 연 것은 메시아가 어디에서 탄생하실지 모르는 채 별빛을 따라 머나먼 사막을 건너온 이방인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말구유처럼 비천한 우리들 삶의 자리에 탄생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분께 온 마음을 활짝 열어드리는 성탄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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