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은 안으로 무너진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운 진시황은 ‘북방 호족이 진나라를 멸망시킨다는 풍설에 불안한 나머지 만리장성 쌓기에 힘을 기울였는데, 정작 진나라를 멸망시킨건 호족이 아니라 시황의 아들 호해였다. 호해의 무능과 간신 조고의 국정농단이 진나라를 15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동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성은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방어하기 위해 흉벽, 내성벽, 외성벽의 세 겹으로 쌓아올린 견고한 방벽이었다. 5세기 이후 천년 동안 수십 차례나 외부 침략을 막아낸 이 성은 15세기에 이르러 오스만튀르크 군대에 함락되었고, 이로써 장구한 로마제국의 역사는 드디어 막을 내린다.
“성을 쌓지 말라!” 칭기즈칸의 유훈이다. ‘성 밖’의 외적을 염려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다. 오히려 ‘성 안’을 더 염려해서다. “정착은 곧 패망이고 죽음이다. 내 자손들이 비단 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은 멸망할 것이다.”
성벽이 주는 안도감이야말로 안일과 나태로 이끄는 독성의 마취제임을 알았다.
벌판에서 양을 치던 몽골인들이 ‘해가 지지 않는 최초의 제국’을 건설하고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성을 쌓지 않고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유목민에게 성벽은 독약이고 길은 해독제였다.
“소통하면 고통이 없고, 소통하지 않으면 고통이 온다.” 동의보감에 기록된 말이다.
성도는 소통하는 존재들이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소통으로 이웃과 소통한다. 생명이 흘러오고 그 생명으로 살려낸다.
간혹 성도들 가운데 삶이 피곤해서, 상처받아서 성격 탓으로 세상과 성도들과 성을 쌓고 지내는 분들이 있다.
성은 안과 밖을 분리한다. 그 사이에는 소통도 화해도 없다. 성벽은 밖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마음의 성벽은 안으로 무너지며 자신을 덮쳐 누른다. 불통의 방어벽을 높이 쌓아 올릴수록 고난의 중력은 더 무거워질 따름이다.
성은 분열이고, 길은 통합이다. 예수가 길이다. 예수는 우리를 하나되게 하신다.
성을 쌓지 말자. 예수라는 길은 생명과 소통이다.
-담임목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