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사명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그 사명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스위스의 위대한 사상가인 칼 힐티의 말처럼, 인생에 있어 최고의 날은 자기의 사명을 깨닫는 날이다. 사명을 자각해서 하나님이 주신 그 사명대로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평생 아프리카인들을 치료하며 그들을 섬겨서 아프리카의 성자라고 불리우는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있다. 그가 랑바레네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을 때, 그의 곁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미모의 보조 간호사가 있었다. 마리안 프레밍거라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1913년 헝가리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재산이 많고 미모가 뛰어났던 프레밍거는 악기 연주도 잘해서 주위에 인기가 많았다. 비엔나에서 음악과 연예 활동을 했는데 아름다움과 재능으로 그녀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녀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더 많은 명예, 더 높은 인기를 얻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쏟았다. 그래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더 큰 향락을 누렸지만, 그 어디에서도 기쁨을 얻지 못했다. 결혼도 두 차례나 했지만 다 실패하였다. 첫 번째는 의사와 결혼했으나 이혼하였고, 또 헐리우드의 뛰어난 영화감독인 오토 프레밍거와 재혼했으나 그마저 실패하였다.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느끼면서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가고 있던 1948년 어느 날,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에서 잠시 돌아와 시골 교회에서 오르간 독주를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어려서부터 슈바이처 박사에 대해 들어왔던 프레밍거는 그 독주회에 참석을 하였다. 슈바이처 박사가 찬송가를 연주할 때,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깊은 평안과 위로를 받게 되었다. 그날이 바로 프레밍거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데, 그녀는 “지금까지 내 인생은 허상일 뿐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허탄했던 삶을 뉘우치고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섬기는데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간호학을 공부한 후, 프레밍거는 아프리카 랑바레네에 있는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가 병원에서 일하게 된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흑인 환자들을 위해 20년을 헌신하게 되는데, 손에 물한방울 묻히지 않고 살아왔던 상류층의 삶을 청산하고 가장 밑바닥 삶으로 자원해 내려온 것이다. 그녀는 늘 이렇게 고백하면서 자신의 사명을 다했다. “예수님께서 나를 파멸에서 건져 주셨으니 나도 그 사랑의 복음을 환자에게 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20년을 봉사한 후, 더 이상 몸이 따라주지 않아 은퇴한 프레밍거는 뉴욕에서 살다가 197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죽었을 때 <뉴욕타임스>에서 이런 기사를 실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이 세상 사람들을 둘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하나는 돕는 자요(helpers), 다른 하나는 돕지 않는 자(nonhelpers)라고 했다. 마리안 프레밍거는 생애의 전반은 돕지 않는 자에게 속했다가 그 후반은 돕는 자에 속한 영광된 크리스천으로 살았다.” <뉴욕타임스> 기사처럼, 그녀의 인생의 전반기는 사명을 찾지 못해 자신의 즐거움과 인기를 위해 살았지만, 사명을 찾은 후반기에는 예수님처럼 낮고 천한 자들을 섬기며 위대한 흔적을 남겼다. 마리안 프레밍거처럼 자신의 사명을 찾고 그 사명대로 사는 삶처럼 위대하고 행복한 것은 없다.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자녀 삼아 주시고 귀한 사명을 맡겨 주신 것은, 하나님의 지극하신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고귀한 사명을, 우리는 온 마음으로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