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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말 목사하기 싫어’

나 정말 목사하기 싫어

로고스 교회 김기현 목사님이 나 정말 목사하기 싫어라는 글을 올려놓으셨는데, 그중 한 부분을

발췌해 나눕니다. “나는 가끔 목사 일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리고 주일 날 예배드리지 않고, 설교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기도 한다. 딱히 할 일이 있어서도 아니고, 놀고 싶어서도 아니다. 으레 하는 예배다. 그러다보니 주전자 속의 개구리마냥 매너리즘에 빠진 내가 싫어 그렇다. 다른 것도 아니고 예배와 설교가 식상하고 진부해지면 안 되지 않나? 그러니 한 번만이라도, 더도 말고 딱 한 번이면 족하다, 쉬고 싶다. 그러나 내 솔직한 속내는 다른 곳에 있다. 설교 때문이다. 나의 어려움은 설교의 내용이나 수사와 문장, 그리고 횟수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설교와 설교를 하는 나의 삶이 일치하지 않는 것 때문에 나는 시름한다. 설교를 듣는 교인들이 눈치를 챘는지 몰라도 나는 안다. 설교하는 내내 나는 나와 싸운다. ‘그러는 너는? 그래서 뭐? 너나 잘하지 그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사랑의 이중 계명을 벗어날 수 없는 설교인지라, 설교하는 동안 넌 사랑하냐? 사랑이 뭔지 알아? 말은 잘해라는 조소와 냉소를 떨치지 못한다. 정말 하기 싫다. 그런 내가 싫다. ‘성도 여러분, 오늘 저는 설교할 자격이나 자신이 없습니다. 설교를 잘 준비하지 못했고, 오늘 설교한 대로 저는 살지 못하는데 어떻게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설교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선언하고 내려오면 교인들 반응은 어떨까? ‘! 우리 목사님 정말 정직하고 솔직하시다.’ 아니면 목사님, 미안하지만 우리는 목사님이 원래 그런 줄 다 알아요. 그러니 오늘따라 유난 떨지 마세요.’ 목사가 설교를 안 하면 우왕좌왕하던지, 격려가 나올지, 냉소가 흐를지, 혼란스러울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끝내 그런 고백을 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만약 내가 성도들 앞에서 그런 고백을 했다면, 아마 나는 일 년 52주 내내 그렇게 말해야 한다. ‘오늘도 못 하겠습니다.’ 그다음 주에 오늘도 역시 못하겠습니다.’ 그럴 바에는 목사 노릇 그만두어야 마땅하다. 게다가 양치기 소년이 한두 번의 거짓말로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니 즐거웠던 것처럼 나도 어쩌면 그걸 즐길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늘도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은 나의 설교와 나의 속내를 위선이 아닌 긴장으로 봐 주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설교하는 와 자기가 하는 설교의 일차 청중으로서 사이의 긴장 속에서 나는 오늘도 면목 없이 하나님의 이끌림에 순종할 뿐이다.” 이 글을 쓰신 목사님은 책도 여러 권 내셨고 신학적 깊이도 있는 아주 훌륭하신 그런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분은 자신에 대해서 거의 절망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기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교와 현실의 자아 사이의 긴장 속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선, 성도의 올바른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자기 부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난 잘 할 수 있는데 아직 이 모양이다난 원래 이 모양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었구나, 그래서 참 죄송하다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전자를 율법이라 하는 것이고 후자를 자기부인이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난 잘 할 수 있는데 아직 이 모양이네라는 자조를 가장한 교만의 자리에서 아니구나, 난 원래 이런 자인데 하나님이 은혜로 나를 완성시켜 가시는 것이구나.’로 옮겨 앉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제가 이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한편으론 부끄러웠고 한편으론 너무 반가웠습니다.저의 마음을 그대로 들켜버린 것 같은 부끄러움과 함께, ‘나와 똑같은 목사가 여기도 한 명 있구나하는 안도의 마음이 동시에 교차했습니다. 아마 이분이나 저나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의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이 세상 살아가는 날 동안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폭로 당하며 살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 즈음에는 노년의 사도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몸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하는 장탄식을 하며 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탄식 속에서 예수님과 십자가라는, 나의 공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해답을 붙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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