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임하시오며’
주기도문의 두 번째 간청은 나라가 임하시오며...입니다. 내가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내 삶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성경적으로 번안하면 ‘하나님이 내 삶을 통치하십시오, 다스려 주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월요일에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안 읽어도 내용이 짐작되어질 만한 책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보낸 후 월요일 일터에 가면, 뒤 바뀌는 문화, 뒤바뀌는 가치관으로 힘들고 갈등합니다. 돈에 대한 생각이 성공에 대한 가치가 교회와 일터가 다릅니다. 주일 한 시간 배운 신앙과 일터 간의 괴리로 고뇌합니다.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삶을 영위해 나갈 것인가? 그 생존경쟁의 치열한 자리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이루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역으로 반문하신 헬무트 틸리케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런 반문입니다. ‘세상 직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쉬울까, 아니면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 것이 쉬울 것인가?’
틸리케 목사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전해주십니다. ‘포탄이 떨어지는 죽음의 장소, 한 가운데서는, 오히려 사람들이 뜨겁게 기도할 수 있고 재앙과 고통과 죽음의 공포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오히려 종말에 대한 기대감을 일깨우게 되지만,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고민을 그렇게 치열하게 하지는 않는다.’ 생사가 오가는 자리에서는 종말에 대하여 소망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간절히 찾는 반면에 일상의 직장생활, 가정생활에서는 종말에 대한 간절함도 없고 하나님 통치에 대한 열망도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중요한 사실을 여기서 하나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은 우리의 실천과 의지의 문제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통치, 그 나라가 우리의 삶 속, 생활 속에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인들 의지에 달려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히 얘기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과거형으로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임했다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 21절에 말씀도 눈여겨 보셔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시기의 오고 안 오고가 아니다, 장소가 이곳이다, 저곳이다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 안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에 실천적 의지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된다라고 하는 것을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 먹기에 달린 문제입니다. 왜냐? 이미 임한 나라요, 우리 안에 존재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마태복음 주기도문 강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