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천국을 세상 사람들은 그걸 ‘유토피아’라고 부릅니다. 무슨 뜻일까요? 접미어 ‘유’ 없다는 뜻이고, ‘토피아’라고 하는 것은 ‘토포스’라고 하는 말에서 나오는데, 장소라는 의미죠. 그러니까 ‘없는 장소’입니다. ‘유토피아’ 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없는 곳이기에 사람들은 더더욱 열망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유토피아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분명히 우리 속에,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눅17장21절)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소망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는 것이겠죠. 타락하고 변질 된
기독교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동원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은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이루기를 열망합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주 앞에 가기까지 바로 이 ‘뜻’에 관계된 싸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다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뜻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그 뜻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선악과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의 뜻을 따라 살았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영생이 아니라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보기에 좋았다고 했던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가 죄의 나라, 불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대로 살았던 결과입니다. 내 뜻을 따라 살면 잠시 속시원하지만,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싸움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며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라고 합니다. ‘주 예수를 믿는다.’라고 할 때 믿음이란 지적인 동의 정도가 아니라 바로 뜻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마7:21절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 뜻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돌이키는 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에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 기도를 가장 철저하게 해냈던 분이 예수님입니다. 세상의 폭력이 당신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감지했던 겟세마네, 오죽하면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 부탁하시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시죠. 그 기도는 무엇이었습니까? ‘아버지, 이 잔을 내게서 물리어 주십시오, 할 만하시거든...’ 그리고 그 다음에 뭐라고 입을 떼시나요?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도 살고 싶었던 생명이셨습니다. 꼭 죽음 아니면은 당신의 뜻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침묵이 때로는 답이죠. 그래서 주님이 하신 말씀이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에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렇게 되고 싶고, 내 뜻은 이러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될 때는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시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주재권(Lordship)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하십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깁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크고 위대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 품에 영혼을 던지시는 겁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부력을 신뢰하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하나님의 품 안에 나를 던지는 겁니다. - 마태복음 주기도문 강해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