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으로 번역되어 있는 ‘일용할’ 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 오늘 살아낼 만큼만, 조금만 주세요’가 아닙니다. ‘오늘 내가 먹고 충분히 나누어서 기뻐할 만큼 주세요.’ 라는 의미입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공급하시는데, 거둔 것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마라, 잉여물을 남기지 말고, 욕심때문에 널 위해 쌓아 놓지마라 하십니다. 이유는자명합니다. 16장 20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내일 나의 안위를 위해 쓸려고 했는데, 썩을 양식이 되고 벌레가 생긴다는 겁니다. 우리 삶에 적용해도 동일합니다.
내가 오늘 먹을 것이 충분히 가졌는데, 여분의 것을 옆에 두고 다른 사람의 결핍을 외면할 때, 내 소유는 썩게 됩니다. 그리고 이걸 먹은 사람도 벌레를 먹게 되고 병이 듭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말의 의미는 바로 이런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학교에서 처음 훈련한 것은 제대로 먹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연습이었습니다. 제대로 먹는 것이란 내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의 배도 채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우리 교회 사무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보면 땅콩을 판화로 표현한 이철수 판화가의 그림이 있습니다. 거기보면, 땅콩 알들이 떨어져 있습니다. 땅콩이 끄트머리에 겨우 붙어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 머라고 썼냐면, ‘덜떨어진 놈’ 그렇게 써 놓았습니다. 덜떨어진 놈이 뭔지를 아시겠습니까? 놓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하는 게 덜 떨어진 놈, 더해가는 삶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덜 떨어진다 표현합니다. 어떤 사람이 더러운 사람인가? ‘더럽다’ 라고 하는 말을 ‘덜 없다’ 라는 의미로 표현하신 분이 있더군요. 자꾸만 나를 비우고, 비워야 깨끗해지는데, 비우지 않고 채우고, 채우고, 채우려니까 덜한 게 없는 사람, ‘덜함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덜없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 깨끗한 삶,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삶이 되는 것은 자꾸만 더해가는 삶의 중독에서 깨어나서 자꾸만 덜어내고, 덜어낸 것을 누군가를 위해 나누며 살게 될 때 하나님은 깨끗한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렇게 살게 될 때 우리가 먹는 밥이 성찬이 됩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그저 하나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을 제대로 먹는 것이고, 제대로 먹는다고 하는 것은 내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굶주린 사람의 배를 함께 채워지도록 내 몫을 나눌 수 있게 될 때 일용한 양식이 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라고 하는 기도는 우리의 삶을 혁명하지 않고는 드릴 수 없는 기도입니다.
- 마태복음 주기도문 강해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