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
문화체육관광부가 장애인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한 예술인을 선정해 수여하는,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상에서 대상을 차지한 시각장애인인 나사렛대 이상재 교수가 있다. 그는 7살 때 동네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망막을 다쳤다. 9번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10살 때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앞이 보이지 않자, 방황을 많이 했는데, 사춘기 때 사직공원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노래 부르다 주위 사람들과 수없이 다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직공원을 내려오던 중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피투성이가 된 이상재 교수를 안타깝게 여긴 그 할머니는 교회에 가서 6개월만 기도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그는 7개월간 매주 금요일 밤마다 철야를 했다. 그러나 시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이 숨 쉬고 있는 한, 절대로 교회는 나가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 그는, 중학교 때부터 클라리넷을 연주해 중앙대 음대에 입학하여, 1990년 수석으로 졸업을 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인 그를 받아주는 오케스트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한 친구의 권유로 미국 피바디 음대에 지원을 했는데 놀랍게도 입학 허가 통지서가 날아왔다. 미국 3대 음대 가운데 하나인 피바디 음대에서 이상재 교수는 6년 동안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습을 하였다. 하루 3시간 정도 자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여, 15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피바디 음대에서 시각장애인으로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모든 것이 그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는 피바디 음대 재학 시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깊은 체험을 하게 된다. 그의 학교 동료였던 친구가 워싱턴에 있는 교회를 가보자고 권유했다. 그 교회의 비빔밥이 기가 막히게 맜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햄버거와 샌드위치에 신물났던 이상재 교수는 비빔밥을 먹으러 워싱턴에 있는 ‘민족장로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그러다 추수감사주일날, 담임목사님이 감사주일을 맞이해 클라리넷 연주를 부탁하였다. 연주에 앞서 설교를 듣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이상재 교수에게 찾아오셨다. 갑자기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당할 때의 자동차 소리와 사직공원에서 싸울 때 들리던 소리, 6개월만 기도하면 눈 뜰거라던 할머니의 소리, 미국으로 올 때 들었던 비행기의 이륙소리 등이 한꺼번에 겹치며 들렸고, 그 요란한 소리에 외부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가슴속에서부터 울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그 음성은 “네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었노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는 클라리넷을 든 채 하염없이 울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는 연주를 하던 내내, 그는 펑펑 눈물을 흘렸고, 연주를 듣던 성도들도 모두 은혜의 눈물을 흘렸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대로 이상재 교수와 늘 함께 하셨다. 귀국 후, 그는 천안에 있는 나사렛대 관현악과 교수가 되었고, 2007년에는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하트 시각장애인쳄버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해마다 50-60회 공연을 하고 있다. 특히, 2011년 10월, 1891년 카네기홀이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그의 오케스트라가 공연하였는데, 관객들이 끝없는 기립박수로 환호하였다.
이상재 교수를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늘 함께 하신다.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선한 뜻 가운데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인도해 주신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신비로운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하며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