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은 금물이다’
이스라엘이 아이성 전쟁에서 승리했다, 소문이 퍼지자 가나안 여러 왕들이 동맹해서 연합군을 만들었습니다. 유독 한 족속이 동참하지 않는데 기브온 족속이었습니다. 이들은 교묘하게 위장하고 여호수아를 찾아와서 항복하는체 하면서 화친을 청하고 종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깜빡 속아 넘어가고 말죠. 그런데 여호수아가 이러한 속임수에 왜 넘어갔을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여호수아와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이러한 얄팍한 속임수에 넘어가고 분별하지 못했을까요? 여호수아 9장 14절에 이유가 등장합니다.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 이것이 속아 넘아가게 된 결정적인 실수가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 묻지 아니했다.’ 기도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단적으로 얘기를 한다면, 나의 모든 삶의 문제를 하나님께 여쭙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신 분께 지혜를 구하고 결정권을 이양해 드리는 것이 주재권(Lordship)입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께 묻고, 또 여쭙고 사십니까?
쇼핑할 때 옷을 살 때도 ‘주님! 제가 이 옷을 사야 되겠습니까? 안 사야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그 순간에 물어보고 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사십니까?
아마 그렇게만 한다면, 충동적인 수 천 만원짜리 밍크, 수 억짜리 가구는 사지 않겠지요. 주님이 그것 사라고 사라고 하시겠습니까?
제가 이 말을 해도 되는 겁니까? 내가 이런 일을 해도 되는 겁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먼저 묻습니까? 누구한테 먼저 묻습니까? 남편에게 묻습니까? 친구에게 묻습니까? 하나님께 물으셔야 합니다.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라’ 이상하게 여호수아는 여기에서 실패했습니다. 왜요? 방심 때문입니다.
방심은 하나님께 묻지 않는 기도의 불통을 낳고, 그것은 내 인생의 기브온을 낳게 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여러번 반복해서 ‘약속의 땅에 가거든 가나안 사람들과 어울리지 마라,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 언약하지 마라, 내쫓아야 한다’ 당부하셨습니다. 이유는 그렇게 되면
너희들이 올무에 빠지고 그들이 가시가 되고 옆구리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브온 족속은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란을 일으킵니다. 사울 왕 때는 그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매우 어려움을 당하는 일을 보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방심해서 기도가 중단되고 이러한 실수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신앙의 방심은 뼈 아픕니다. 그때 속아 넘어갑니다. 그때 무너집니다.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기도를 쉬게 됩니다. 방심하는 사이에 말씀을 등한이 하게 됩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금요부흥회 여호수아 강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