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강림절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 기간입니다. 강림절, 대림절이라고도 합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메시아 탄생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그 빛에 어두운 우리들 삶의 자리를 비춰 신앙의 인격을 새롭게 하는 시기입니다. 대강절은 원래 마태복음의 동방박사, 누가복음의 마리아,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제사장 사가랴와 그 아내 엘리사벳 그리고 경건한 의인 시므온 등이 예수님 탄생을 고대하던 일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메시아에게 드릴 예물을 준비했고 엘리사벳은 지복송(至福頌,Beatitude)으로, 마리아는 메시아 찬가(Magnificat)로, 시므온은 축복송(Benedictus)으로 메시아의 나심을 찬양했습니다. 교회력에서는 한 해가 대강절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대강절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뜻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2세기에 이르러 대강절은 보다 넓은 신학적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과거의 역사로만 보지 않고, 현재의 살아있는 사건으로, 앞으로 성취될 미래의 섭리로 해석하는 관점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강절은 라틴어로 adventus, 영어로 advent라고 합니다. '온다, 강림한다'는 뜻입니다. 이 강림에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강림, 두 번째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의 강림, 세 번째는 세상 끝 날 영광중에 다시 오실 예수님의 두 번째 강림입니다.
대강절을 이처럼 2천 년 전에 있었던 절기의 기념으로만 보지 않고, 오늘도 계속되며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대강절의 보다 깊은 의미입니다.
첫 번째 대강절의 무대는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이 건너온 척박한 광야였고, 마리아가 살던 천대받는 땅 나사렛이었으며,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초라한 집이었습니다. 호화로운 궁궐도, 웅장한 성전도 아닌, 그 낮고 비천한 자리에 대강절의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흥겨운 징글 벨이 없었습니다. 메시야는 우리에게로 오시는데 우리는 저 첫 번째 대강절의 사람들처럼 기다림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멀고 험한 사막을 건너온 이방의 현인(賢人)들처럼, 어둡고 고달픈 삶의 현장에서 메시아의 밝은 빛을 고대하던 마리아와 엘리사벳처럼, 낮고 어두운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빛으로 나아가는 영적 분투의 계절이 대강절입니다.
이미 성령의 강림을 믿음으로 맞이한 우리 앞에 세번 째 대강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강림입니다. 그 세 번째 강림을 기다리는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주님께 드릴 예물로, 우리의 전인격이 메시아 찬가의 마음속 선율로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비로소 징글 벨의 즐거움도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