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대구의 한 교회 장로님이 대표기도를 하면서 동화사의 불상이 무너지게 해 달라고 해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기도만 했지만 아예 절에 몰래 들어가 불상에 붉은 페인트칠을 하거나 불상의 머리를 잘라버리는 식의 “만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개신교인들의 우상에 대한 반감은 상당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상은 돌이나 나무로 만든 그런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기독교인들에게는 우상도 아닙니다. 현대인들의 우상은 그런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공, 사랑, 성취, 사람들의 인정, 부, 권력과 같은 것들입니다. 때로는 자녀, 유명인, 연인, 자아와 같은 특정한 사람이 우상으로 등극(?)하기도 합니다. 어떤 형상을 가지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엇이든 팀 켈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좋은 것이 궁극적인 것”으로 바뀔 때 그것이 우리의 우상이 됩니다.
사실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는 목회자도 우상숭배자가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사역이라는 우상, 인기라는 우상, 권력이라는 우상, 돈이라는 우상에게 마음을 주고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기가 얼마나 쉬운지 생각해보면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에게는 우상이 없습니까?
크리스천 상담가요 작가인 데이비드 포올리슨의 글은 이 부분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속에 던지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무언가가, 다른 누군가가, 당신 마음속의 실질적인 신뢰와 충성과 기쁨을 누리고 당신 마음을 온전히 차지하며 당신 마음의 섬김을 받고 있느냐?’ 다음의 질문들은 사람들의 우상체계를 드러내 준다.
‘삶을 지탱해주는 안정과 안전을 얻고 인정을 받기 위해 누구 혹은 무엇에 의지하는가?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며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행복해지는가? 어떻게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가? 어디서 힘과 성공을 찾는가?’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지 우상을 섬기는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찾는지 아니면 거짓 구세주들한테서 구원을 찾는지를 밝혀준다.”
절에 있는 불상에게 분노하기 전에 자기 마음에 은밀히 숨어있는 우상부터 신경을 쓰십시오. 자신의 우상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 우상부터 처리하십시오. 과거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그랬듯이 당신의 그 진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십시오(살전 1:9). 그렇게만 한다면 절에 아무리 대단한 불상이 있어도, 그런 불상이 대한민국의 사찰들에 아무리 많이 있어도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