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론(高地論)과 미답지론(未踏地論)”
십수 년 전, 청년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고지론과 미답지론'이라는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고지론(高地論)이란 전투에서 고지를 점령해야 그 전투를 이기고 영토를 장악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 사회 파워집단의 장악, 즉 고지의 정복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답지론(未踏地論)이란 이와 반대다. 우리가 미답의 땅, 즉 답사를 하지 않은 미지의 땅을 조금씩 점령해야 하고, 그것은 종국에는 고지마저 와해시킬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논리다. 다시 말해 미답지론이란 남들이 가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분야에 가서 묵묵히 희생을 하며 씨를 뿌리는 일을 하자는 것이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근본적인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는 논지다. 미리 말하면, 나는 고지론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 비성경적이다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고지론 주장에는 최소한 현재 한국 사회와 교회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너무나 위험한 몇몇 함정들이 있다. 먼저, 개인적 야망을 고지론으로 그럴싸하게 위장할 위험이다. 신앙을 자신의 성공 수단으로 삼고, 하나님마저도 자신의 야망 성취의 후원자로 삼을 수 있다. 고지론은 나 자신의 성공과 야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럴듯한 포장지로 사용될 위험이 크다. 또 하나, 이미 그리스도인은 한국 사회에서 상당한 분야의 고지를 점령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파워집단이라 불리는 국회의원, 정치가, 판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그리고 기업인들 중에 기독교 신자가 무려 30~40%에 이른다. 당장에 국회의원은 40%가 그리스도인임에도,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는 최근 하늘을 찌르고 있다. 강남의 가장 큰 부촌인 서초 방배 지역과 분당 인구의 거의 40%가 기독교인이라는 통계가 있으며, 가장 큰 교회들이 그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심지어 기독교인 대통령도 벌써 세 번이나 배출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독교인들이 지금 고지를 점령하지 못해서 이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리 사회가 이토록 어두운 것인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고지에 오르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바로 투항과 정복이다. 투항은 무기력하게 적에게 자신을 내주며 목적을 이루는 비겁한 방법이고, 정복은 싸워서 적을 굴복시키는 당당한 방법이다. 그런데, 한국의 소위 그리스도인인 파워집단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고지에 올라갔을까? 부끄러운 투항이 많았다. 분명 투항의 방법이 아니라 엄청난 노력과 땀으로 인정을 받고 당당히 고지에 오른 감동적인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많은 분이 고지에 올라간 뒤에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권력의 상층부로 올라간 뒤 검은돈이 거래되고 룸살롱은 자주 가게 되며, 달콤함 나눠 먹기에 동참하게 되는 것일까? 이렇게 고지에 오른 뒤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했다면, 자신의 야망을 이루었을 뿐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한국 기독교가 힘이 없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고지를 점령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고지를 점령했지만, 첫째는 투항해서 오른 때문이며, 둘째는 정작 힘들게 잘 올라갔다 해도 그 후 고지의 문화에 동화되어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모습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며, 셋째는 가짜 그리스도인들이 고지에 넘쳐 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