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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야베스의 기도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 어머니가 야베스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하나님께 아뢰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사 내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역대상 4:9,10)

야베스의 기도는 짧은 두 구절에 불과하지만, 축복에 주리고 형통함에 목마른 현대인들에게 마치 가뭄에 단비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이 기도는 종종 좋은 설교 자료로 사용되곤 한다.

그런데 종교학자 제프리 마한이라는 분이 지적하기를, 이런 현상을 나르시시즘의 자기중심적 욕구와 꼭 맞아떨어지는 이기적 경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나님을 물신화하는 바알 우상숭배를 경계하는 뜻으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축복과 형통만큼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 것도 없으리라. 기독교만의 현상이 아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이슬람의 쿠란에도 무슬림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는 약속이 들어있다. 종교학자들은 현대불교의 가장 큰 폐단이 버림의 해탈소유의 집착으로 뒤바꾼 기복신앙이라고 지적했다.

사도바울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했다(디모데후서 1:8). 만일 야베스의 기도처럼 명예롭고 소유가 많아지고 환난과 근심이 없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라면, 평생 매 맞고 쫓겨 다니다가 교수형을 당한 사도바울의 삶은 비신앙적이거나 실패한 삶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야베스의 기도는 개인의 행복이나 영달을 간구하는 기도가 아니다. 야베스의 어머니가 수고로이 그를 낳았다는 기록은 야베스가 바벨론 포로시기의 고난 중에 태어났다는 뜻이고,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는 것은 존경받는 민족의 지도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야베스의 기도는 하나님께 개인적 욕구를 아뢴 기도가 아니다. 지역을 넓혀달라는 기도는 잃어버린 고토, 가나안의 회복에 대한 갈구로 새기는 것이 온당한 이해일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간구하는 야베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고난받는 이스라엘을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시키셨다. 이것이 이스라엘 공동체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한 야베스의 기도요,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아닐까.

우리는 가족공동체, 교회공동체, 사회공동체, 국가공동체, 그리고 인류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누구도 홀로 살아갈 수 없다. 80년 가까이 지속되는 남북분단, 안팎으로 몰아닥치는 나라의 어려움,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 무고하게 희생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도 야베스처럼 '자신과 공동체를 동일시'한 공동체의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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