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 하나님 사용”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고 물질은 사용수단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고 물질은 '사랑'해 마지않는 시대이다. ‘돈 없는 가난보다 돈밖에 없는 가난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지만, 그 ‘돈 밖에 없는 가난’, 즉 돈은 있는데 내면적 인격의 자산은 거덜나 버린 가난을 얻기 위해 모두들 노심초사하며,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까지 동원하려는 모습이 안타깝다. 북한에 탈북하신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의 수가 무려 천 만명에 이른다는 남쪽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오늘날의 경제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남북한 주민들의 삶을 전체적으로 비교해 볼 때, 남쪽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저 북쪽보다 훨씬 더 부패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미쳐 있고, 남한 사람들은 썩어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빨리 통일이 되어서 북한의 무너진 제단들을 다시 수축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물론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저 북한에 오늘의 이 남쪽과 같은 타락한 신앙, 이 부패한 교회들을 그대로 옮겨놓으려는 심산이 아닌지 괜한 걱정이 앞선다. 북녘 땅에 숨어있는 지하교회들은 성장할래야 성장할 수 없는 극심한 고난의 늪을 수 십 년간 통과해 오고 있지만, 그 믿음의 맑고 순수한 내용은 이 남쪽의 모습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파스칼은 팡세에 이렇게 썼다.
“자기의 신앙에 만족해 있는 것보다 더 큰 불신앙은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믿음에 만족해 있다면 그것처럼 큰 불신앙도 없다. 우리는 저 북녘의 지하교회들을 연민과 동정의 눈길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을 그 엄혹한 고난 속에서도 신앙의 촛불을 꺼뜨리지 않고 지켜온 저들의 신비한 소망에 겸손히 고개 숙일 수 있어야 한다. 남쪽의 신도수가 더 많다고 해서, 남쪽 교회들이 더 크고 화려하다고 해서 우리의 믿음이 북쪽의 신앙보다 더 올바르다고 믿는 바보는 없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우리 안에 더 많다는 점에서 남쪽의 신앙은 더 왜곡되고 더 타락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신앙의 진실은 목쉰 소리로 울부짖듯 기도하는 종교성의 과잉이나 옷을 찢고 가슴을 쥐어뜯는 종교적 감성의 발산에 있지 않다. 신앙의 진실은 오직 신앙인의 올곧은 인격과 구체적이고 바른 삶의 자리 안에 있다.
하나님 그분을 ‘사랑’하기보다 그분의 손 안에 있는 능력을
‘사용’하기를 즐기고 있는 한, 무슨 신유 은사가 넘치고 무슨 기적 같은 외형적 부흥이 있다고 해서 남쪽이 북쪽보다 더 큰 믿음을 가졌노라고 장담할 수 없다.
‘북한선교’를 부르짖기에 앞서 거꾸로 저들의 순수한 순교적 믿음을 배워 가는 진정한 ‘남한선교’가 우선되어야 하리라는 주장을, 욕 얻어먹을 각오하고 내어놓는 이유다. 호의적인 반응은 얻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하나님을 ‘사용’하지 않고 ‘사랑’하는 길이라 믿는 데에는 조금도 주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