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뚫은 종”
하나님은 원칙적으로 이스라엘 속에 종을 두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가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한 자들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에 대한 율례를 주시면서 설령 누가 종이 된다고 하여도 6년 동안만 하게 하다가 7년이 되면 출애굽 상태로 차별 없는 자로 놓아 주라고 하셨다. 그런데 어떤 종이 7년 안식년에 자유를 주어도 계속하여 주인과 함께 살고자 하면 주인은 그 종을 데리고 재판장에게 가서 사정을 말하면 재판장은 그 종을 성전의 문에다 귀를 대고 송곳으로 귀를 뚫게 하였다. 귀를 뚫은 것은 주인의 말을 귀에 새기는 것이고 주인의 말만 듣겠다는 뜻이다.
그 종은 왜 자유를 주어도 주인의 종으로 살고 싶어 할까? 주인의 은혜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은혜가 고맙기 때문이다. 참 주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귀 뚫은 종을 주인은 사실상 양자로 삼고, 그에게 더 큰 은혜를 누리게 된다. 귀 뚫은 종은 더 이상 억지로 종노릇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그 은혜로 감사로 주인을 섬긴다.
신앙생활은 억지스러운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종으로 자처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참 주인을 만나야 가능하다. 은혜를 만나야 자원케 된다.
삶이 고단하고 헌신이 부담되고 관계하는 영혼들이 부담스러운 대상이 되는 것은 여전히 억지 종으로 머물러서다. 은혜의 종을 경험하지 못하면 혹은 은혜가 고갈되면, 모든 사역이 관계가 억지 종된 것처럼 부담스럽다. 사단이 율법이 노리는 지점이다. 빌 2:5-8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다. 하나님 앞에서 귀 뚫은 종으로 순종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우린 모두가 예수의 순종으로 구원을 받았다. 성도는 예수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예수의 죽으심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올바로 아는 성도들은 자원하여 귀 뚫은 종으로 살아가게 되어있다.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종이 있다. 법으로 타의에 의하여 섬기는 종과, 은혜로 자원하여 섬기는 종이 있다. 종으로 섬기는 자와 아들로 섬기는 자가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자원하여 교회를 섬기고, 예수그리스도를 구경하는 자는 법으로 섬긴다. 교회 안에는 귀 뚫은 종과, 귀를 뚫지 않은 종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올바로 아는 성도는 귀 뚫은 종처럼 자원하여 섬긴다. 말씀을 지식으로 듣는 자는 종처럼 일하지만, 말씀을 생명으로 먹는 자는 아들로 섬긴다. 말씀을 지식으로 듣는 자들은 복음을 자기 사욕으로 이용하고 말씀을 생명으로 먹는 자들은 복음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게 된다.
나는 어떤 종인가? 율법 아래서 억지로 종노릇 하는가? 아니면 은혜로 자원하여 섬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