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
이번 추석에도 많은 사람들이 산을 넘고 들을 건너 고향을 찾았다. 분주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 고향과 부모를 찾아가는 여정은 영혼의 귀소 본능이라고 할만하다. 낙엽이 지고 만물의 생명력이 시들어가는 가을은 쓸쓸하고 고독한 계절, 마음이 가난해지는 시절이다. 파릇한 봄의 희망과 여름의 시푸른 열정을 다 보내고 생명의 끝을 알리는 낙엽의 때에 이르면, 가을의 허전함을 엄숙한 경건으로 채워주는 기도문이 떠오르곤 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신앙과 구도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 전문이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고 삭막한 삶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그 은총에 힘입어 살아가는 우리는 결코 소망의 기도를 멈출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새롭게 고치실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기원을 올리며, 그동안의 누추했던 삶을 정갈하게 씻어내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딜 때이다. 고독이 깊을수록 하늘의 위로를 구하고, 마음이 가난할수록 하나님의 은총을 갈구하게 된다. 낙엽 지는 가을이 되면, 누구나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겸허한 고백을 끄집어내기 마련이다. 격랑처럼 굽이치던 고뇌와 갈등의 세월, 백합처럼 순수했던 신념의 골짜기를 모두 지나,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한 가난한 영혼으로 홀로 서야하기에 이 가을에는 더욱 기도가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