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감사’
모든 기도의 시작은 회개이고 모든 기도의 결론은 감사다. 공의의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회개 없이 기도의 입을 열 수 없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 없이 기도의 입을 닫을 수 없다. 그래서 감사는 '가장 완벽한 기도'이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바리새인은 따로서서 "하나님, 나는 죄인들과 같지 않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9~14)
바리새인이 따로서서 기도했다는 것은 자신과 세리를 구별하여 자기의 비교우위를 드러내겠다는 의도다. 세리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다. 세리들이 로마로부터 세금징수권을 부여받아, 동족에게서 거둔 세금 중 자기에게 할당된 금액만 로마에 바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제 몫으로 착복했기 때문이다. 그런 반민족적 매국노와 자리를 함께 할 수 없었던 바리새인은 세리와 따로서서 기도를 드린 것이다. 반면에 세리는 바리새인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기도를 드렸다. 이것은 곧 제단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뜻이다. 의로운 바리새인은 당당하게 제단 앞에 가까이 나아가 기도를 드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단 가까이 나아간 의로운 바리새인의 기도와 제단에서 멀리 떨어진 죄인 세리의 기도를 역전시키신다.
바리새인의 감사는 하나님 앞에서 '낮은 자'가 아니라 세리보다 '높은 자'라는 비교우위에 서있었다. 회개 없는 감사, 교만한 감사는 올바른 감사가 아니라는 것이 주님 가르침이다.
우리는 혹시 바리새인처럼 누군가와 비교우위를 드러내기 위한 교만한 감사, 가짜 감사는 아닌가? 요즘은 더욱 진짜가 그리워지는 가을이다.
11월 셋째 주일은 추수감사절이다. 추석은 농사 수확기가 시작되는 때이고 추수감사절은 주요 작물의 수확이 다 끝난 때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윗날만 같아라" 라는 덕담을 주고받았다. 빈궁한 삶에서 그나마 수확철인 추석 때가 비교적 넉넉했기 때문일게다. 그러나 우리의 감사는 들판의 풍성한 수확 때문만이 아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요(살전 5:18) 우리가 겪어온 모든 애환에 대하여도 감사하는 것이다. 궂은 일, 괴로운 일마저도 그리스도인에게는 감사할 일이다. 그 모두가 우리를 연단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로마서 8:28)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진짜 감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