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빛, 더 궁극적인 빛으로’
롱펠로우라는 시인이 “미래를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라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새해 주일 아침이다. 새로운 시작은 늘 기대와 소망을 붙든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빚어내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넘어, 우리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허락하신 주님, 2023년을 우리에게 새로운 현재의 시간으로 열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린다. 지난해 섣달 그믐날 저녁에 지평선 서쪽 너머로 사라진 해가 동녘에 다시 떠오른 것이지만, 새해 첫날의 햇빛은 유난히 밝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새 소망의 빛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새해 첫 아침, 우리는 햇빛이 아닌 다른 새 빛을 본다. 달력 속의 빛, 크로노스의 빛이 아닌 영혼의 빛, 카이로스의 빛이다. 만물 중에 하나님이 가장 먼저 창조하신 그 빛이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3,4)
태양보다 먼저 창조된 태초의 빛이다. 해와 달과 별은 넷째 날에야 창조되었다. 천지창조 첫째 날에 창조된 태초의 빛은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니다. 마음의 귀로 듣고 영의 눈으로 보는 말씀의 빛, 생명의 빛이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신명기 6:4)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들을 귀 있는 자여, 들어라.”(마가복음 4:9) 생명의 빛 예수님 말씀이다.
지난해 우리는 듣고 싶은 말에 열심히 귀 기울였다. 그렇지만 새해에는 듣고 싶지 않은 말에도 무던히 귀 기울일 수 있기를 소원한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보고 싶은 것만 선택하는 사람은 빛의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없다. 듣기 좋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을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파당을 지어 소통과 화합을 깨뜨리면서 국민을 좌절로 실망으로 몰아넣어 왔다. 그런데 저들을 비판하는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혹시 듣기 싫은 말에는 귀를 막지 않았던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지 않았던가? 이 마음의 벽을 깨뜨리지 않는 한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산상수훈의 은총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다.
새해 첫날 아침, 태양이 밝게 빛난다. 그리고 그 태양보다 더 밝은 태초의 빛이 우리를 환히 비추고 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의 빛, 마음속 어둠의 벽을 허무는 평화의 빛이 이 한 해 동안 우리 앞길을 밝히 비춰주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