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후유증인가? 소위 ‘이명’이라는 녀석이 왔다. 환청처럼 귀 안에서 24시간 라디오를 진행한다. 덕분에 깨어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이런저런 상념들이 밤을 채운다. 동네 친절한 의사의 진단이 다 나이 먹어서, 몸이 쇠해서, 한 마디로 늙어서 그렇다고 위로 아닌 위로 같은 위로를 한다. 보통 60은 넘어야 오는 청력 감퇴가 의심된다며 직업이 뭐냐 묻길래, 귀 보다 입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갸우뚱한다.
새해를 맞으면 나이 한 살 또 먹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앞으로는 만(滿) 나이를 쓰게 될 테니까 그런 탄식이 줄어들지 모르지만, 살아갈수록 나이를 더 먹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 살고 있다는 뜻이니, 탄식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새해를 맞지 못하고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많다. 저들이 그토록 바라다가 끝내 만나지 못한 새해를 탄식하며 맞이하니 아이러니다. 늙는다는 것은 낡아가는 것이 아니다. 더 무르익고, 더 튼실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늙어가는 것은 은총이다. 그 은총에 감사하는 것이 늙어도 낡지 않는 비결이다. 늙음과 낡음이 만나는 자리에는 허무와 절망이 아니다. 늙음이 곧 낡음이라면, 삶은 살아감이 아니라 죽어감일 따름이다.
딱히 한 게 없는데... 난 이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한 것 같은데, 저 앞에 있는 신호등은 어느 새 깜빡거리다 빨간 불로 바뀌어 버린 것 같을 때가 있다. 내 마음이 나이를 먹는 시간이 조금 더딘 걸까? 아니면 여름과 겨울을 반복하며 새겨지는 나이테처럼 기쁨과 슬픔을 번갈아 느껴야만 마음이 나이를 먹는 걸까? 이 만큼의 나이를 먹었음에도 이런저런 생각에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 보면 나이 듦이라는 게, 어리석음이 한 꺼풀 벗겨지고 나의 근원이신 분 앞에서 좀 더 진실해지는 착각도 잠시 들기도 한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럼 끝도 반인가? 아니다. 끝은 전부다. 시작에서 중간을 거쳐 끝에 이르러야 비로소 전체가 드러난다. 아침 녘에는 그날 하루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아직 희미하다. 한낮에는 직무와 활동으로 분주하다. 해가 지는 저녁이 되어 서야 하루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 된다. 인생이 그러하다. 전체를 분별하고 관통하는 성숙함이 나이 듦이다. 기력은 쇠하고 노안으로 세상이 달리 보이고, 청력이 감하여 사오정 같은 소리를 한다고 가족들에게 핀잔을 들어도 나이 듦은 주의 은총임이 분명하다.
넘치는 교회도 나이를 먹었다. 미운 7살이다. 그래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고운 7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