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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가’인가, ‘단심가’인가?!

하여가인가, ‘단심가인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우리 성도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고백이 바로 이 '단심가'와 같은 결연한 고백이 아닐까! 그 어떤 악한 세력이 온갖 미사여구와 먹음직한 당근을 들이밀어서 이방언의 하여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렇게 하여가를 불러 댄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요동치 않고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어떻게 바꾸겠는가, 고백하는 용사가 되는게  본무요 의무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내 안에서 임 향한 일편단심의 그 단심가가 나오는 게 아니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그 '하여가'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을 깨닫는다. 겉으로는 멋지게 일편단심에 나오는 그 '단심가'를 불러 대면서 내 안에서 용솟음쳐 올라오는 그 '하여가'를 감추기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그게 신앙 좋은 모습으로 사람들 에게 비치니까. 그러한 유약한 모습이 스스로에게 폭로될 때마다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고 절망감에 낙담하는게 우리 모습이다. 그리고 그걸 더 감추기 위해 더 경건한 척, 더 행복한 척하며 산다그런데 어느 순간, 말씀에 귀가 열리고 그 은혜의 복음이 이해되면서 자유로워졌다. '단심가'는 임향한 그 일편단심의 그 성도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불러 주시는 사랑의 노래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골백번 죽는다고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사랑하고 반드시 구원하고 말 거야, 이 '단심가'는 예수가 우리에게 불러주는 노래인 것이다그게 바로 복음이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열심이 내 안에서 '단심가'를 부르면서 나를 이끌고 계시는 그동안에 육적인 나, 이 세속적인 내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하여가로 그 하나님의 열심을 방해하고 있는 게 우리의 신앙 현실이다. 그래서 성도는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단심가'와 '하여가' 사이에서 올바른 자아 인식을 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앞에 항복하고 들어가게 되는 것이 은혜다. 성도는 끊임없이 하여가로 타협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을 인정하게 되는 그런 죽음의 과정과, 그래서 예수님이 홀로 완성하실 수밖에 없었다는, '내가 다 이루었다', 그 십자가, 그 승리의 현실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갓 신앙생활에 입문한 사람들은 몸에 피가 펄펄 끓어서 십자가라도 질 기세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만, 복음을 점점 이해하게 되고 그 복음, 진리, 말씀의 깊은 단계로 들어가게 되면 그게 얼마나 무모하고 어린 생각이었는지를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그리고는 약할 때 강함이 되시는 방식으로 아들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아들 만들기 프로젝트를 이해하게 되는 걸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을 얻는 순간부터 자기에게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온 그 은혜의 선물이 어떤 것인지를 차근차근 배워가는 것이다. 언제까지? 죽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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