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안에서만 자유하다
돈으로 집을 살 수 있지만, 가정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침대를 살 수 있지만 잠을 살 수는 없고, 시계를 살 수 있지만 시간을 사지는 못한다. 돈으로 책을 살 수 있어도 지혜는 살 수 없고, 약을 살 수 있어도 건강을 사지는 못한다, 돈으로 피를 살 수 있지만 생명을 살 수는 없으며, 베이비 시터를 구할 수는 있어도 엄마를 구할 수는 없다. 이처럼 세상에는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것이 많이 있다. 진리가 그렇다. 진리는 사거나 팔지 못한다. 진리의 가치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요한복음 8:32). 그 진리에는 무한한 가치가 있지만, 가격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 값없이 주시는 그 은혜는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선물'이라고 고백했다(에베소서 2:8). 하나님의 사랑, 구원의 은혜는 돈으로 살 수 없다. 상업적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헌신은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일 뿐, 은혜에 대한 대가나 보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대가가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으며, 유럽으로 가서는 문화가 되었고, 마침내 미국으로 와서 기업이 되었다.” 라고 혹자가 평했다. 미국인들의 신앙행태가 헌금을 바치고 현세적 복을 기원하는 상업적 거래 관계로 변질되었다는 질책이다.
'미국에서 기업이 된 교회가 한국으로 건너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는 세상의 비아냥이 우리의 고민이 되어야 한다. 헌금이나 봉사는 미래의 어떤 보상을 기대하는 투자가 아니다. 진리에 대한 대가는 더더욱 아니다. 값없이 진리를 선포하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는 우상숭배를 가장 엄중히 경계하셨다(누가복음 16:13). 교회는 재정으로 움직이는 이익단체가 아니다. 제자 공동체의 재정을 담당했던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돈으로 팔아넘긴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복음 10:8) 복음의 진리는
'가격'이 없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단 세 단어로 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가 있다. “뱀, 너무 길다.”(Serpent trop long.)
노벨상을 받은 쥘 르나르의 글이다. 아담을 유혹한 뱀으로부터 시작된 죄의 역사가 오래도록 길게 이어진다는 의미다. 예수님은 가장 짧은 지혜를 선포하셨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 자유를 외치지만, 거기에는 삶과 죽음의 진실이 없다. 자유의 진실은 죄인을 품어 안은 십자가의 신비 안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의 물음은 그때만의 물음이 아니다. 오늘의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엄숙한 물음이다. “사로잡힌 자에게 해방을, 눈먼 이에게 광명을,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이사야 61:1, 누가복음 4:18)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한 예수의 이 선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