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개

담임목사 칼럼

> 교회소개 > 담임목사 칼럼

언젠가 맞이할 나의 죽음 준비하고 있는가? 팀 켈러

언젠가 맞이할 나의 죽음 준비하고 있는가? 팀 켈러

 

죽음은 거대한 단절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우리에게서 또는 우리를 그들에게서 갈라놓는다. 죽음은 거대한 모욕이다. 셰익스피어의 말마따나 우리가 구더기의 밥임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죽음은 끔찍하고 무섭고 잔인한 변종이다. 삶이란 본래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죽음 앞에서 그토록 슬퍼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죽음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 우리의 철천지원수다. 평생 우리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다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목숨을 앗아 간다.

그런데 우리는 선조들에 비해 죽음에 준비되어있는 정도가 훨씬 뒤처져 보인다. 왜 그럴까?

첫 번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현대 의술의 위대한 축복이 죽음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끔 가려 놓았다는 것이다. 애니 딜라드가 소설The Living 에서 자세히 묘사했듯이, 19세기에만 해도 죽음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놀랍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집집마다 가족들에게서 삶을 앗아 갔다. 여자들은 출산 중에 고열에 시달리다 죽었고, 아기들은 몸이 약하거나 심각한 대기 오염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 남자들은 …… 강물, , 황소, 중기 톱, 단단한 것을 가루로 가는 기계, 채석장의 돌, 벌목장에 쓰러지거나 구르는 통나무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다. ……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 나무치럼 단단한 물체에 부딪쳤고, 말에게서 내동댕이쳐지기나 (자신의 실수로 말에서 떨어졌고, 물에 빠졌고, 병들었고, 귀앓이가 뇌로 번졌고, 홍역으로 열이 펄펄 끓었고, 폐렴으로 하룻밤 사이에 세상을 떠났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죽음을 가까이서 보았다. 단적인 예로 영국의 저명한 목사이자 신학자인 존 오웬은 열한 명의 자녀와 첫 아내를 모두 먼저 떠나 보냈다. 그 시대에는 누구나 자신이 살던 집에서 죽었으므로 오웬이 사랑하던 이들도 그의 눈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식민지 시대의 미국 가정은 자녀를 평균 셋 당 하나 꼴로 장성하기 전에 잃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모든 사람의 기대 수명이 40세 안팎이다 보니 어려서 부모를 여린 사람이 태반이었다. 거의 누구나 자라면서 시신을 보았고, 젊거나 나이 든 친척의 임종을 목격했다.

오늘날에는 의학과 과학 덕에 조기에 사망하는 많은 원인들을 해결했고, 절대다수의 사람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병원과 호스피스 센터에서 쇠약해져 가다가 사망한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도록 단 한 사람의 죽음도 지켜보지 못하는 일이 당연해졌다. 서구 사회의 경우 장례식에서 뚜껑이 열린 관에 잠시 눈길을 줄 때를 제외하고는 죽은 사람을 볼 기회도 없다.

아툴 가완디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이, 현대 사회가 이토록 죽음을 숨긴다는 것은 모든 문화 중에서 우리야말로 임박한 죽음의 불가피성을 부정하며 산다는 뜻이다.

시편 9012절에서 우리에게우리 날 계수함을 명한 목적은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기 위해서다.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며 살아갈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했다. 물론 언젠가는 닥쳐올 죽음임을 우리도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 속으로는 그 사실을 억누르며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시편 기자는 이를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 밝힌다.

우리는 두려워서 의사를 피하고, 죽을 몸의 운명을 부정하며, 몸이 이대로 영원할 줄로 생각한다. 그러다 막상 죽음이 코앞에 닥쳐오면 현실성 없는 극단적 의료 조치를 요구한다.

 

죽음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의 명료한 선포가 우리 영혼을 각인되어야 하는 이유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2:14-15

 

새글 0 / 338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338 안 먹어도 배부른 이유 2026.02.28
337 두리번거리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 2026.01.29
336 “아멘하면 굳게 서리라” 2026.01.14
335 차든지 뜨겁든지(라오디게아 교회) 2025.12.04
334 작고 초라해도 관찮아~ (빌라델비아 교회) 2025.12.04
333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진 죽은 자(사데교.. 2025.12.04
332 두아디라 교회에게 약속하신 권세와 새벽 별 2025.11.04
331 감추인 만나와 새 이름의 흰돌(버가모교회.. 2025.11.04
330 너무 부담스러운 부탁, ‘죽도록 충성하라’.. 2025.11.04
329 에베소 교회에 주신 주님의 편지 2025.11.04
328 끝까지 챙기시는 하나님 2025.09.18
327 ‘도피성’이 되는 더 넘치는 교회 2025.09.09
326 ‘귀 뚫은 종’ 2025.08.26
325 ‘당신에게는 시온의 대로가 있습니까?’ 2025.08.20
324 ‘웃사처럼 하지 않기’ 2025.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