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는 목 관절이 없다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이 도피 생활하다가 2005년도 돌연 귀국을 했다. 온갖 많은 말들이 오갔다. 동정론과 책임론이 대립했다.
회장의 책 가운데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이 있다. 대우를 일으킨 모토였다. 대우의 비전이었다. 이 비전으로 대우라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지만, 세계적으로 망했다.
그런 김우중회장을 바라보고 모 신문에서 이런 논평을 했다.
“세상은 넓어도 기댈 데는 없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그 세상도 그가 기댈만한 곳은 되지 못했다고 한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서에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 등장한다.
“사나 죽으나 인생에게 유일한 위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답이 이것이다. “오직 예수” 뿐이라고...
어느 날 여호사밧 왕이 유다 땅에 암몬과 모압, 에돔의 연합군이 침략해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성경학자들은 이 연합군의 규모를 100만이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여호사밧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외적이 쳐들어왔는데, 생사의 기로에서 금식한다는게 쉬운 일일까?
불과 100리 정도 하루 길을 사이에 두고 목숨이 촌각인데, 국가 안보회의를 소집하고 군인들을 소집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상식이다. 여호사밧도 그런 상식을 몰랐을까?
우리 삶이 흔들릴 때, 생명이 위험할 때에, 가정이 위태로울 때에, 우리들의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갈 때에 ...우리가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할까?
위에 중요한 구절이 있다. “두렵지만,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직역하면, “그는 그의 얼굴을 여호와께 드렸다”, 히브리식 표현인데, 하나님만을 찾기로 결심하였다는 뜻이다.
돼지는 목 관절이 없다. 그래서 평생 땅만 바라보고 산다.
우리가 돼지처럼 땅 만 바라보고 사는 걸,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보고 가만히 계시지 않는다. 그래서 걸려 넘어지게 만든다. 고난 속으로 집어 던진다.
“뒤집힌 돼지가 하늘을 본다.” 비로소 하늘이 있음을 본다. 그게 아버지 사랑이다.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구체적인 의미가 뭔가?
역대하 20장 12절에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나의 한계와 무능력을 인정하고 맡기는 것이다.
믿음이 성숙하면 할수록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가 보인다.
내가 얼마나 무기력한 죄인인지, 과거 나의 똑똑으로 자만하며 살아왔으나 주의 은혜 없으면 얼마나 버텨낼 수 없는 존재인지를...
내 생각, 내 몸뚱아리 하나도 내 맘대로 통제할 수 없는 갈대 같은 존재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라는 고백이 나오지 않는가?
돼지는 목관절이 없어서...라는 변명보다 내가 신의 손길이 닿은 사람임을 아는 넘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