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그릇’
한때 코로나 사태로 중단되었던, 새해 첫날 보신각의 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타종이 끝나면 현장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나눈다. 미국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에서도 열부터 하나까지 거꾸로 세는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커다란 전광판에 'Happy New Year'라는 글자가 화려하게 새겨졌다. 복된 새해를 바라는 기원이다. 이처럼 새해 첫 마디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모두 복을 비는 기복의 덕담이다. 행복의 추구는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닌 본성이다. 종교에서도 초월적 절대자에게 기복의 소원을 아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복 주시는 분으로 믿는다. 기복을 굳이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재산이 넉넉하고, 몸이 건강하고, 나라와 사회에 이름을 크게 떨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다만 그러한 소원이 자신의 노력보다는 밖에서 공짜로 주어지는 행운의 손길에 좌우된다는 인식이 기복 심리의 부정적인 면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도 밖에서 오는 행운을 바란다는 느낌이 강하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수기 6:24~26)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축복의 기원이다. 이 축복에는 조건이 따른다.
“내가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여호수아 1:7)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은총이지만, 그 은총을 받을 그릇이 필요하다. 그 그릇이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삶이다. 예수님은 그 삶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간명하게 요약하셨다. 사랑의 삶이 곧 복된 삶이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부유한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드넓은 영지와 수많은 농노를 물려받은 톨스토이는 많은 재산과 높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지 못해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는데, 그에게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준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다. 그는 자기의 농노들을 모두 해방하고 철저한 공동체주의와 경건생활을 통해 영혼의 안식이라는 고차원의 복을 얻게 되었다. 그가 깨달은 복은 ‘받는 복’이 아니라 ‘주는 복, 베푸는 사랑’이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복음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말씀이지만,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증언한다(사도행전 20:35). 받는 복보다 주는 복, 베푸는 사랑이 더 크다는 가르침입니다.
복 많이 받는 새해보다 사랑 많이 베푸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