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가려면 죽어야 돼요”
주일학교 유치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만약 선생님이 전 재산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대답했다. "아니요!"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만약 그 재산을 모두 교회에 헌금으로 바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아니요!" 아이들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만약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회 청소를 하면 천국에 가게 될까요?" "아니요!" "만약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죽으면 천국에 가게 될까요?" "아니요!"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러자 가장 어린 다섯 살 아이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이 죽어야 돼요!"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지만 단순히 지나칠 말이 아니다. 죽어야 천국에 간다는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의 대답은 영육 간에 정확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내세의 천국에 가려면 현세의 육신이 죽어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천국이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17:21) 내세의 천국 이전에 지금 여기서 누리는 천국이 있다는 놀라운 말씀이셨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가 438장의 가사이다. 내세의 천국에 거친 들이나 초막집이 있을 리 없다.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이 거친 들처럼 험난하고 초막집처럼 옹색하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으면 거기가 곧 천국이라는 뜻이다.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야말로 현세의 삶을 천국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영적 능력 아닐까! 그 능력은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의 대답처럼, 우리가 죽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하였다"고 고백했다.(고린도전서 9:27) 스스로 제 몸을 쳐 주님의 말씀에 복종시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영적인 능력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내가 죽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는 누구나 펄펄 살아 자기를 높이려는 데 혈안된 곳이다. 기업가는 기업가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모두가 주어진 자유와 권리를 한없이 누리려고 한다. 그것이 사회적 갈등과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그처럼 모두가 높이 오르고자 하는 자리에는 천국이 임하지 않는다. 천국은 낮은 자리에 임한다. 나치의 감옥에서 순교한 본회퍼 목사님은 이런 가르침을 남겼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것은 '와서 복 받으라'는 뜻이 아니다. '와서 죽으라'는 뜻이다. "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의 대답이 가슴을 때린다. "천국에 가려면 죽어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