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and Slow, slow’
인간은 말하는 존재이지만 창조원리상으로 먼저 듣는 존재다. 모든 사람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언어를 배운다.
제일 먼저 듣기(Listening)이다. 먼저 들어한다. 그 다음 말하기(speaking)이고, 그 다음 읽기(reading), 쓰기(writing)를 배운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먼저 듣게 되어 있다. 들어야 말을 하기 때문이다. 듣지 못하면 말을 못하게 되어있다. 대부분의 청각 장애인이 결국 말을 듣지 못해서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세상에 다양한 문제는 사실 잘 듣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한자 들을 청(聽)에는 상당한 의미를 내포한다. 귀 이자 밑에 임금 왕 자가 있다. 임금과 같은 귀, 큰 귀로 들으라는 말이다. 그 옆에 열 십자에 눈 목자를 옆으로 뉘어 놓았다. 열 개의 눈으로 집중하라는 자세에 대한 지적이다. 그 아래에 한 일 자에 마음 심자. 한 마음으로 들어라. 이게 들을 청이다. 우리는 이렇게 경청하는가? 이청득심... 잘 들으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의미다.
두 번 째, 그리스도인은 경청을 잘해야 할 뿐아니라, 말은 더디해야 한다. 사람은 입이 하나고 귀가 두 개다. 왜 그런가? 듣는 것에 절반만 말하는 뜻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다. 뇌 과학을 연구해 본 학자들의 연구는 놀랍다.
사람이 1분 동안 200단어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근데 사람의 뇌는 1분에 800단어까지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즉, 들은 것에 4/1만 말하라 이 뜻이다. 많이 들으라고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대화에 보면 90% 독점하는 분들이 있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인생에서 내가 후회하는 것은 다 내가 뱉어낸 말때문이다. 잠언 21: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한다>라고 했다. 잠언 10장 19절,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다>라고 한다. "침묵보다 나은 말이 있을 때만 입을 열라" 는 격언을 기억하자.
마지막으로 성내기도 더디해야 한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수모를 겪었던 대한항공 조현아씨를 기억할 것이다.
분노하면 정신 건강에 해롭다. 화 내면 여러가지로 유익이 없다. 나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 얼굴에 사표를 던지고 싶지만 왜 하지 않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그런가? 처, 자식때문인가? 그리스도인은 그런 이유로 화를 안 내는게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사람의 화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어야한다고 야고보는 말하는 것이다.
6일 째 하나님이 짐승을 만드셨다. 그래서 짐승의 숫자가 6이다. 요한계시록에 <지혜 있는 자는 세어 봐라 그 수가 짐승의 수니....666> 왜 6이 짐승의 수냐? 짐승이 6일째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7일째 안식하셨기때문에 7이 완전수요, 하나님을 상징하는 숫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아주 독특하다. 6일째 먼저 하나님이 짐승을 만드시고, 6일째가 끝나면서 사람을 만드시고 곧바로 7일째 쉬셨다. 인간은 아주 독특한 존재다. 짐승과 하나님 사이에 낀 존재가 인간이다. 짐승 차원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하나님 차원의 존재자가 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피조물이 인간이다. 인간이 분노할 때 짐승처럼 된다. 반면 마더 테레사처럼 하늘의 차원으로 살아낼 수 있는 존재가 또한 인간이다. 오늘부터라도 ‘Quick and Slow, slow’를 실천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