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참아내는 비결’
야고보는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말하면서, 세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듭니다.
첫 번째 농부처럼 길이 참고 기다리랍니다. 전 세계 평균 강수량 절반밖에 안 내리고, 우리나라의 3/ 1분밖에 비가 안 내리는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스라엘의 평균 강수량인데, 아예 안 내릴 때는 강수량이 제로인 시간이 반년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농부가 계속 기다릴 수 있습니까? 때가 되면 비를 내려주실 하나님에 대한 신뢰 때문입니다.
그 인내의 배후에 뭐가 있습니까? 계절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야고보가 인내의 예로 든 것은 선지자입니다.
이사야는 맨발과 벗은 몸으로 3년을 다녀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조롱이 있었을까요? 그 고난의 시간을 이사야는 견뎌냅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뺨도 맞았고요, 진창, 구덩이에 갇혀 있었습니다. 민족의 멸망을 선포했다가 민족의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에스겔은 390일을 왼쪽으로 눕고, 오른쪽으로만 40일 눕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통해 죄를 대신 지라는 행위예술을 합니다. 심지어 하루 230g의 음식과 물 0.6리터만 먹어야 했고, 소똥으로 떡을 구워먹어야 했습니다. 이 선지자들이 그 고난의 시간, 조롱의 시간을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참을 수 있었을까요? 자기를 불러주신 그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때문에 참을 수 있었던 겁니다. 세 번째로 욥의 예를 듭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고난, 하루 아침에 자녀들을 잃고, 재산을 잃고 몸에는 병들어 기왓장으로 벅벅 긁어댈 수밖에 없는 고통, 그 와중에 부인이 욕을 하고 도망갑니다. “니가 그래도 네 하나님께 순전함을 지키겠느냐, 차라리 하나님 욕하고 죽어 버리라” 그런데 욥이 참습니다. 친구들이 와도 도움이 안 됩니다. 욥 자신도 하나님의 선 하심이 의심됩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늘을 향해 울부짖습니다. 하나님께 따집니다. 그런데 욥은 끝까지 선을 넘지는 않았습니다. 끝 까지...
농부의 인내, 선지자의 이내, 욥의 인내.... 그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농부, 결국은 이른 비와 늦은 비 때가 되면 내려주실 하나님 신뢰하니까 기다릴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 그 조롱 가운데 어떻게 인내합니까?
자기를 불러 주신 하나님, 자기에게 소명을 주신 하나님, ‘이렇게까지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
욥, 아무리 아내가 뭐라고 하고 친구들이 뭐라고 해도 어떻게 끝까지 인내해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절대신뢰입니다.
때론 우리도 농부들처럼 우리 인생에 가뭄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선지자들처럼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을 견뎌야 될 때가 있습니다. 때론 욥처럼 이해할 수 없는 까닭 없는 고난을 견뎌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견뎌낼 수 있습니까? 나의 하늘 아버지에 대한 절대 신뢰가 있을 때만 견딜 수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선하신 분이다, 가장 좋을 것을 준비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길이 참으라고 말하면서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라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기다리고 인내하는 시간에 마음을 강하게 하라는 말씀으로 야고보서를 마무리합니다.
- 야고보서 강해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