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은 질문의 선자자이고 ‘어찌하여’, ‘Why’ 라고 많이 물었던 사람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간단하게 말해서 ‘왜 가만히 계십니까?’ 어찌하여 겁탈과 강포가 앞에 있고 사람들은 왜 맨날 분쟁하고 싸웁니까? 하나님, 당신 이러시면 안 되는거 아닙니까? 정인이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 왜 가만히 계셨습니까?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 왜 가만히 계십니까? 흉악범들, 히틀러같은 푸틴같은 인간들 왜 하나님 가만히 두십니까? 두 번째 질문은 그래서 기도했는데, 왜 응답 안 하십니까? 세상이 너무도 악하니까 좀 하나님 어떻게 하시라고 부르짖었는데 왜 응답이 없습니까? 북한 땅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는데, 왜 아직입니까? 왜 내버려 두세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이 두 가지 질문에 하나님이 응답하시죠. 그게 2장 5절부터 11절까지 길게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나 일하고 있어' 이런 뜻이죠. 하박국의 두 번의 걸친 분노에 찬 질문에 하나님은 준비하고 계신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이 무엇이냐?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갈대아는 바벨론 제국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일을 안 하신게 아니라, 일을 준비하고 계셨는데, 믿고 싶지 않은 일인 거죠. 이 말을 듣고 하박국이 또 질문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것입니다. ‘하나님 근데 왜 그렇게 일하십니까?’ 그거예요. ‘아니 응답해 주시는건 고마운데 그 응답이란게 아니 어떻게 하나님 이렇게 일하셔요? 세상에 아무리 우리가 좀 잘못했기로서니 또 누굴 일으켜요? 더 나쁜 갈대아 사람 일으켜서 우릴 심판하신구요? (13절)
이 질문이 어쩌면 하박국서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지 아니하시는 것도 사실 우리가 답답하고,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도 답답한데, 진짜 우리가 제일 답답한게 뭐냐면 하나님 응답이 내 맘에 안 들 때가 많다는 것이죠. 내 생각은 이렇게 기도하면, 이렇게 답하셔야 되는데, 그렇게 응답을 않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박국서를 통하여 확인되는 하나님, ‘나는 너의 기대와 상관없이 일 한다, 너의 예상과 상관없이 일한다, 나는 너의 상식과 상관없이 일 한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나의 생각은 너보다 높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당혹스러운 일을 경험한 사람이 또 하나 있는데 엘리야입니다. 부를 때는 언제고, 도망가라, 까마귀 주는 것 먹고 연명해라, 원수 이세벨의 고향에가서 숨어라, 거기 과부집 에 가서 빌붙어 살아라, 그러다가 진짜 엘리야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벌어지는데 과부의 아들이 죽습니다. 당신 때문에 죽었다고 과부가 원망하고 덤빕니다. 그러자 엘리야의 원망이 하나님을 향합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을 죽게하셨습니까?” 이 ‘또’ 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쌓인 게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이렇게 일 하시면 안 되잖아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일해요?’ 이게 엘리야가 경험한 것이었어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cs 루이스가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라는 그의 책 마지막에 이렇게 남깁니다. “주여 이제는 당신이 왜 대답하지 않으셨는지 압니다. 당신 자신이 대답이십니다. 저의 모든 질문은 당신의 얼굴 앞에서 사라집니다”
우리 가지고 있는 모든 질문들은 우리가 하나님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때 해결됩니다. 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