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왔더니 심심치 않게 듣는 이야기가 있다. 기복 신앙은 나쁜 것이고 기복을 경계해야 한다고... 과연 그런가? 시편 3:8에 보면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려 주소서” 우린 복이 필요한 존재다. 다만 성경이 말하는 복의 내용이 우리가 기대하는 복과는 다를 수가 있다. 민수기 6장에 등장하는 아론이 축복한 내용을 살펴보자.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기 원하며...”(24) 우리가 겸손히 구해야 될 복은 ‘하나님의 지켜주심’이다. 순간순간 우울해지고 허무해지고 무력감에 시달릴때가 있다. 의미가 상실될 때가 있다. 낙심이 온다. 다 때려치고 싶다. 직장도 때려치고 싶다. 어쩔 땐 부모 역할도 때려치고 싶다. 그때 우리 마음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절실한 것이다.
두 번째,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무엇이 복인가? 하나님이 얼굴을 내게 향하여 주시는 것이 복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얼굴 빛을 내게 비춰 주시는게 복이다. 지옥이 어딘가? 하나님의 얼굴 빛이 비춰지지 않는 곳이 지옥이다. 하나님이 영원히 외면하신 곳이 지옥이다. 지옥이 왜 무서운 곳인가? 불타는 불 못이 있고, 벌레가 우글거려서 아니다.영원히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누가 지옥에 가는 줄 아는가? 세상 사람은 지옥을 만든 하나님이 잔인하다고 말한다. 잔인하신게 아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시는 것이다. 평생 하나님을 얼굴을 거부하고 믿기를 거부한 이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영원히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내시는 것뿐이고 그걸 지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은 그 얼굴을 비쳐주시는 구원을 베푸신다. 하나님의 얼굴빛을 피에 도망가는 물고기 뱃속 요나에게 얼굴빛을 비춰 주셨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에게 얼굴 빛을 비추신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다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니라” (눅 22:61-62)
또 무엇이 복인가? “은혜 베풀기를 원하며...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25-26)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히브리어로 직역해 보면 요셉에게 샬롬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형들이 그에게 인사를 안 했다는 말이고, 요즘 말로 하면, ‘생깠다(?)’~ 그 말이다. 하나님이 생까시면 삶이 꼬인다. 또한 은혜가 복이다. 은혜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인간은 은혜받아야 산다. 그래서 베드로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 이라고 했다.(벧전5;1) 복음을 축소하고, 은혜를 축소하는 사람들 있다. 개탄스럽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구원의 은혜만 겨우 막차 탄 강도를 개(?) 부러워하는 모태 신자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신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뿐만 아니라, ‘은혜 위에 은혜가 있다것을 경험한 자만이 아는 것이다.
-주일예배 민수기 강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