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부으심”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끝내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그 모든 기구와 제단과 그 모든 기물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민수기7:1)
도대체 이런 것들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성전 기물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했다 것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구약을 읽는 이유에 대하여 히브리서 10:1은 말한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 ,
영어로는 the law is only a shadow of the good things that are coming.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구약은 장차 올 것의 모형이요, 그림자이기때문에 의미가 있다.
그러면 무엇의 모형일까? 이것이 그림자라면 실체는 무엇인가?
성막에 사용된 모든 기구의 기본 재료는 기본적으로 조각목이다. 조각목이 뭔가? 싯딤나무라고 알려진 볼품없는 뒤틀린 나무다. 그것을 깎고, 다듬고, 정교하게 만들어서 성전 기구로 사용하신다. 누구 손을 통해서? 브살렐과 오홀리압 손을 통해서다.
3단계 잘 기억해야 한다. 볼품없는 조각목이 브살렐과 오홀리압에 의해서 성전 기물로 재탄생,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데, 거기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되고 나서야 쓰임받는다.
서론에 구약은 장차 올 것의 모형이요, 그림자라고 했는데, 무엇을 상징하는지 감이 오는가?
바로 우리 얘기다. 우리는 광야의 조각목, 싯딤나무같은 존재였다. 구부러지고 뒤틀린 볼품 없는 우린 죄로 인해 굽어지고 뒤틀려 있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레바논 백향목을 택하지 아니하시고 광야의 싯딤나무를 택하셨다는 것이다.
광야의 조각목이 유다 지파 브살렐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듯이, 우리는 유다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다.
말씀의 기록대로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구별되고 쓰임 받는다. 싯딤 나무에게 기름 붓지 않는다. 먼저 성막기물로 거듭나게 한 뒤에 기름이 부어진다. 제자들은 광야의 조각목같이 볼품 없고 희망없는 어부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주님이 부르셔서 거듭나게 하신다. 새로운 존재로 바꾸신다. 근데 주님이 명하신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 언제까지? 성령 받기 전까지는...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할 때만 내 증인이 될 수 있다고 하신다. 광야에 볼품없는 싯딤나무 같은 우리를 예수 믿을 때 거듭나게 하시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구별하시고, 놀랍게 사용하신다.
우리 문제가 무엇인가? 하나님께 쓰임 받고는 싶다. 그런데 구별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다. 거룩이란 구별된다는 거다. 남들과 다르다는 거다. 마이클 조던은 농구를 아주 잘한다. 조던이 농구를 잘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그의 플레이가 남다르다는 말이다. 다르다는 것은 특별하다는 것이다. 왜? 남다른가? 다르다는 것은 놀랍게도 능력이 될 수 있다. 구별됨은 즉 기름부으심은 능력이다.
-주일예배 민수기 강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