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신앙이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전 세대가 신앙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자녀 세대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기 때문일까?
보통은 둘 다 맞는 말이다. 앞선 세대가 바른 신앙을 전달하는 일에 실패하면 종종 다음 세대에서 그 문제가 증폭되기 마련인데, 가장 큰 폐해는 우리 자녀들이 명목상의 크리스천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부모 세대의 신앙적 헌신이 세대를 거치면서 안주로 바뀌고, 안주는 다시 시간을 거쳐 세상과의 타협으로 변질된다. 청년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에 민감하다. 이는 젊은 세대가 이전 세대의 신앙으로부터 돌아서게 된 첫 번째 이유다. 예를 들어,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던 청년들은 교회가 사회차별에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위선적인 기성 교회를 바라보며 결국 하나님을 떠나갔다.
우리는 복음이 삶 속에서 행위로 드러나게 해야 한다. 복음은 결코 학문적이거나 추상적인 대상이 아니다. 예를 들면, 신명기 6장 7절은 자녀들에게 시간마다 주기적으로 말씀 강론을 진행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앉았을 때에든지 [중략]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가 삶의 일부가 되도록 그들을 이끌라는 의미이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을 자녀들에게 보여 줌으로써 그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도록’ 하는 것이다. 즉, 자녀들이 삶 속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방향성을 놓고 고민할 때, 복음에 가치를 두며 나아가도록 그들에게 영적 지혜를 보여 주어야 한다.
신명기 6장 20-25절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나의 믿음의 행위가 세밀히 연결되어야 함을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 변화, 즉 그분이 우리로 하여금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하신 사실이 나의 신앙 생활을 어떻게 선하게 바꾸어 가고 있는지 증거해야 한다.
“우리가 …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 우리를 … 인도하여 내셨나니.”
스스로의 신앙과 나의 율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만 알려 줄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대해 증언함으로써 우리는 자녀들에게 본이 될 수 있다. 신앙의 성숙을 위해 겪는 성장통에 대해 그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하고, 회개가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아름답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을 증언할 때 반드시 격식이나 공식적인 표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앞선 세대로서 행동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현실적인 선택 앞에서 영적으로 지혜로워야 하며, 그 믿음 생활이 주님과 인격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 제도와 공식적인 가르침에 의지한다.
또한 아이들에게 교리를 충실히 가르친다면 그들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그들이 교회에 참석하도록 이끌기만 하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단지 앞선 이들의 본이 되지 않는 믿음 생활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부모 세대가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적 문제 앞에서 보여 주는 모순, 또 영적 변화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는 권위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경험하면서 믿음의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