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로 기억되지 맙시다
본문은 나오미가 회복되자 비로소 룻의 멘토가 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나 자신이 먼저 살아야 남을 살릴 수 있기에, 먼저 살아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한 끼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꾸는 것입니다. 그 꿈은 순종하는 자에게 허락됩니다. 룻기에는 단 한 번의 초자연적인 사건도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이 매번 기적적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된 것, 보아스가 밭을 보러 왔던 것, 그리고 기업 무를 자를 성문에서 때마침 만난 것 모두 우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일어나는 은혜입니다. 룻은 구약의 말씀을 기억하여 이삭을 주우러 순종했고, 보아스는 율법에 순종하여 밭을 남겨두었으며, 기업 무를 사명에 순종하려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인생에서 '우연히', '때마침' 일어나는 일들은 순종이 전제될 때 의미 있게 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이지만, 한 여인의 작은 삶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시시콜콜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들은 모두 작은 자들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고 계십니다. 시편 기자가 노래한 것처럼, 우리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우리를 생각하고 돌보시는지 놀라워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보아스와 '아무개'를 대조합니다. 성경은 의도적으로 보아스의 이름은 기록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은 '아무개'라고 기록합니다. 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사명을 감당하기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득이 있을까 하여 하겠다고 했으나, 손해가 될 것을 알자 포기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손해 볼까 봐 주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개'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사명을 감당한 보아스의 이름은 기억됩니다. 무명한 자가 사명을 감당하면 유명한 자가 되지만, 유명해도 계산하면 무명한 자가 됩니다.
이 시대는 사사 시대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원래 기업 무를 자가 사명을 거부하면 여자가 그의 신발을 벗기고 침을 뱉는 수치를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순종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무서운 장치였지만 , 사람들은 이를 '신발을 벗어 주는' 전례로 약화시켰습니다. 우리도 주일 성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희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보아스가 사명을 감당하자 백성들은 그를 축복했습니다. 순종한 보아스에게 세 가지 축복이 임했습니다.
첫째, 그의 배우자인 룻이 복을 받았습니다. 둘째, 그 자신도 유력하고 유명한 자가 되었습니다. 셋째, 그의 후손이 복을 받아 '베레스'의 집처럼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레스'는 '역전'과 '돌파'를 의미합니다. 보아스처럼 순종의 길을 걸을 때, 우리와 우리의 배우자, 그리고 후손이 역전과 돌파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일오전 설교, 룻기 강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