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사처럼 하지 않기’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가장 거룩한 물건입니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가 든 항아리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세 물건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던 흔적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계명 돌판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우상 숭배를 보고 던져 깨뜨렸던 것이며,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모세와 아론의 영적 권위에 도전했던 죄의 흔적이고,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신뢰 없이 불평했던 죄의 증거였습니다. 이처럼 언약궤는 죄의 흔적을 담고 있지만, 가장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에 보관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 시절, 하나님의 언약궤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였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없이 언약궤의 주술적, 마술적 능력만 기대하고 전쟁에 나갔고, 그 결과 3만 5천 명의 백성이 죽고 언약궤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블레셋은 언약궤를 자기들의 신 다곤의 신당에 두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조롱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에 역병을 내려 언약궤를 돌려보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언약궤는 원래 있어야 할 지성소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비나답의 집에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치되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사라졌지만, 그들은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살았다는 심각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새 왕으로 등극한 다윗은 이 사실을 알고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기 위해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언약궤를 옮기는 일에 3만 명이나 되는 백성이 동원되어 기쁨으로 경축하며 언약궤를 새 수레에 싣고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갑자기 뛰었고, 수레 위에 있던 언약궤가 떨어지려 하자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손을 뻗어 언약궤를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웃사를 쳐 죽이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웃사의 죽음을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웃사의 행동은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민수기 4장 15절에 따르면, 언약궤와 같은 성물은 오직 고핫 자손만이 다룰 수 있었고, 반드시 어깨에 메어 옮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웃사와 아효는 고핫 자손이 아니었고, 블레셋 사람들이 했던 방식 그대로 새 수레에 언약궤를 실어 옮겼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성물을 만지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하셨고, 만지면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사는 선한 의도를 가졌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채 자신의 방식대로 언약궤를 다루다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이 웃사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 웃사처럼 익숙함과 관성에 따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2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있으나 바른 지식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갈망과 욕망의 내용이 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여기에 확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영적 상태가 웃사와 같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베뎃돔은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언약궤를 메어 옮겼고, 그 결과 석 달 만에 온 집안이 복을 받았습니다. 웃사처럼 자신의 방식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오베뎃돔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는 진정한 신앙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주일예배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