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뚫은 종’
바울은 빌립보서를 쓰면서 '기쁨'이란 단어를 16번이나 사용했습니다. 겨우 네 장뿐인 짧은 서신임을 감안하면 정말 빈번하게 쓴 셈입니다. 그러나 당시 바울의 상황은 기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사형을 앞두고 있었고, 함께했던 많은 이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심지어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마저 박해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기쁨을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에게 기쁨은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에서 솟아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종'이라 표현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은 단순히 '일꾼'이 아닌 '노예(slave)'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더 이상 너희들을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말한다"라고 했고,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 자신을 '양'이라고 표현했지만, 바울은 굳이 자신을 '종'이라 지칭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받아쓰기 시험지를 숨겨 책가방의 종이 된 적이 있습니다. 시험지가 들킬까 두려워 가방을 늘 몸 가까이 두고, 누군가 스치기만 해도 가슴을 졸였습니다. 결국 들통 나 어머니께 혼이 났지만, 이처럼 우리는 늘 무언가에 매여 종 노릇을 하며 살아갑니다. 고대 종의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자유인이 되는 것. 둘째, 죽도록 노력하여 빚을 모두 갚는 것입니다. 셋째, 누군가 나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를 위해 이 마지막 방법, 속량(贖良)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닌,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우리는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덕분에 죄의 종에서 자유인이 되었는데, 바울은 다시 자신을 '종'이라 말합니다. 그는 주인을 바꾼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에는 6년간 종으로 일한 자는 7년째 자유롭게 되지만, 어떤 종은 주인이 너무 좋아 영원히 종으로 남겠다고 결단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경우, 그는 문지방에 귀를 대고 송곳으로 귀를 뚫어 평생의 종이라는 표시를 했습니다. 귀 뚫린 종은 그 어떤 자유보다 좋은 주인을 만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종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자신의 영원한 주인이 되기에 합당한 분임을 깨달았기에, 자발적으로 '예수의 종'이 되었습니다.
과거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믿는 '천동설'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갈릴레오 같은 과학자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의 인생은 천동설과 같습니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 믿고,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늘 모순이 생기고, 삶은 제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인생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은, 내가 주인이 아니고 진짜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고, 내가 그분 주위를 돌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삶의 모순이 풀리고 진정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변의 만류와 가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종이 주인을 제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단순히 우리의 몸이 자유롭게 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짜 좋은 주인'의 종이 되는 데 있습니다. 귀 뚫린 종은 자유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 때문에 기꺼이 자신을 바쳐 영원히 종이 되기로 결단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주인의 종이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 주일예배 설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