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챙기시는 하나님
민수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36장에는 이미 민수기 27장에서 해결되었던 슬로브핫의 딸들 이야기가 다시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억울함을 들으시고, 아들이 없을 경우 딸들이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이는 당시로서 파격적인 조치였으며, 약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36장에 다시 이 문제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슬로브핫의 딸들이 다른 지파의 남성과 결혼했을 때, 상속받은 땅의 소유권이 그 남성의 지파로 넘어갈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땅이 다른 지파로 넘어가면 희년이 왔을 때 영구히 귀속될 수 있으며, 이는 이스라엘 전체에 혼란과 내분을 일으킬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므낫세 지파 지도자들은 단순히 재산 손실을 걱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땅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고 각 지파의 정체성과 사명이 담긴 영적인 유산이었습니다. 이 기업이 다른 지파로 넘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훼손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나할라’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얻은 구원, 성령의 열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같은 귀한 기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업을 세상의 쾌락과 성공에 대한 탐심으로 쉽게 내어주려 합니다. 마치 슬로브핫의 딸들이 다른 지파로 시집가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기업을 세상에 조금씩 옮겨놓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 기업을 지켜내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사명입니다. 므낫세 지파의 우려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은 놀라웠습니다. 하나님은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마음대로 시집가라'고 허락하시면서도, '오직 그 조상의 지파 안에서만 시집가라'는 명확한 울타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기도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이 명령에 불평하거나 반발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당장의 편리함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지키는 순종의 길을 택했고, 그 순종은 그들 삶과 기업을 영원히 보전하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민수기 마지막 장에 이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민수기는 히브리어로 '넘버스(Numbers)', 즉 '숫자'라는 뜻입니다. 두 번의 인구 조사를 기록하며 사람의 수를 세는 책입니다. 세상은 죄인이나 힘없고 연약한 여인들을 그들의 숫자에 넣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민수기 35장에서는 도피성으로 숨어든 죄인들을 챙기시고, 36장에서는 힘없는 여인들을 챙기시고자 민수기 말미를 할애하시는 겁니다. 누가복음 12장에는 두 앗사리온에 다섯 마리가 팔리는 참새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끼워 파는 한 마리는 상품 가치가 없어 아무도 사려 하지 않는, 하찮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한 마리조차 잊지 않고 챙기십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민수기는 34장에서 땅 분배를 완료하며 끝날 수도 있었지만, 35장과 36장을 통해 억울한 죄인들과 연약한 여인들을 끝까지 챙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숫자에 포함시키시고, 외면받는 존재들까지 사랑으로 챙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을 보여줍니다. 이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 주일예배 설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