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부담스러운 부탁, ‘죽도록 충성하라’
서머나교회는 오늘날 터키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이즈미르에 위치했으나, 당시에는 황제 숭배가 극심하여 그들의 핍박은 다른 교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독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황제 숭배 맹세를 거부했기에 상인조합에 가입할 수 없었고, 이는 곧 생계의 어려움, 즉 극심한 경제적 가난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고통 속에 있는 서머나교회에게 주님은 먼저 깊은 위로를 건네십니다. "내가 너희 모든 고통을 안다". 그리고 역설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니가 예수 때문에 가난해진 것을 알고 있는데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이 땅의 재산은 빼앗겼을지라도, 천국에는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다음 명령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지치고 탈진한 그들에게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은, "이제 시작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은, "진짜 죽을 거라는 말"입니다. 이 명령은 마치 사령관이 중상 입은 병사에게 "진짜 전투는 이제부터이니 죽을 때까지 버텨 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주님은 고통을 멈춰주는 대신 더 큰 고난을 선포하셨을까요? 영적 전쟁의 실체를 보라는 것입니다. 배후에는 로마 정부가 아닌 마귀가 조종하고 있으며, 서머나의 작은 버팀이 사단의 군대를 무너뜨리는 영적 파워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서머나교회를 고구려의 '안시성'과 같이 가장 중요한 요충지에 두고, "너밖에 없다"고 눈물로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주님은 시험의 수위를 조절하십니다. "사람이 담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나에게 시험 강도가 세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우리의 영적 실력을 높이 평가하고 계시다는 역설적인 증거입니다. 큰 시련은 인생의 불순물을 정화시키고, 가짜 교인들은 도망가지만 진짜들은 남아 '정예부대'가 됩니다. 이처럼 제련된 서머나교회는 일곱 교회 중 빌라델비아와 함께 어떤 질책도 받지 않고 칭찬만 들었습니다. 주님은 최악의 상황, 곧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 죽음보다 더한 영광을 준비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혹독한 시련을 견뎌낸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도망가는 그 브레이킹 포인트(Breaking Point)를 돌파할 때, 비로소 영적인 근육이 생기고 새 은혜와 능력이 부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죽을 것 같은' 시련의 순간이 있다면, 주님은 여러분을 믿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이 시련의 순간을 도망가지 않고 돌파하여, 주님께 "죽도록 충성"함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영광스러운 성도, 영광스러운 교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주일 예배 설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