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인 만나와 새 이름의 흰돌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살펴보는 이유는 단순히 '칭찬받는 교회'가 되자는 데 초점을 맞추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 말씀들은 교회 시대를 통해 사탄이 우리를 어떻게 미혹할 것인지에 대한 경고이며, 오늘날 우리 각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입니다. 버가모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는 표현을 들었을 정도로 황제 신전과 우상 신전들이 집결된, 우상 천지인 도시였습니다. 당시 로마 총독들은 막강한 권력과 심판권을 가졌으나, 주님은 편지를 시작하시며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자신을 묘사하십니다. 이는 참된 권위와 심판권이 오직 우리 주님께 있음을 버가모 교회가 핍박 속에서 두려워 떨 때 먼저 확인시키신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우상 숭배와 황제 숭배의 외부적 핍박을 잘 견뎌냈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아 죽임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안디바와 같은 충성된 순교자까지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아시고 편지에 직접 호명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화려함이나 번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 세상이 보기에는 보잘것없을지라도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칭찬하시는 순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외적으로 핍박을 견디면서도, 그들 중 어떤 자들이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에 속아 우상을 섬기고 행음했기 때문입니다. 발람의 교훈은 돈에 눈이 멀어 자기 유익을 위해 말씀을 왜곡하고, 하나님도 섬기면서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만족과 행복의 근거로 삼는 혼합주의를 말합니다. 육신의 만족을 위해 교회를 사용하는 행위가 바로 발람의 가짜 복에 속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의 다른 것으로부터 만족을 얻으려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며 여러분은 발람의 교훈을 좇고 있는 것입니다. 니골라 당의 교훈은 초기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율법폐기론입니다. 영적인 구원은 고급하고 육적인 죄는 영향을 못 준다면서,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마음대로 살아도 천국 간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자율'을 '자유'로 오해한 것으로,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자기 원하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경건한 척하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믿지 않는 자들과 똑같이 사는 모습이 바로 이 영지주의입니다. 주님은 경고하십니다. "회개하라.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너희와 싸우겠다". 여기서 '좌우에 날선 검'은 말씀이며, 회개하지 않고 혼합주의나 무율법주의에 빠진 자들에게 영원한 지옥 심판이 있음을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이기는 자에게는 "감추인 만나와 새 이름이 쓰여진 흰 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감추인 만나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흰 돌은 당시 법정에서 무죄와 성결, 거룩을 상징했습니다. 또한 제사장의 에봇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돌처럼, 이방인인 성도들에게도 죄 사함을 주시고, 거룩하게 만들어주시며, 천국 입장권처럼 새 이름이 새겨진 돌(여러분의 이름)을 주사 하나님 앞에 나아갈 특권을 얻게 하신다는 위로이자 격려입니다. 궁극적으로 이기는 자들이 이것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예수님의 이름과 여러분의 이름이 하나 됨), 하나님이 베푸시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하늘의 만족과 풍요, 곧 영원한 구원을 누리는 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구원은 이미 영적으로 누리고 있으나, 장차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완성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발람과 니골라의 교훈은 우리 시대를 미혹하는 마귀의 세력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풍요를 위해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잔치를 온몸으로 느끼고 누리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23편의 고백처럼, 여러분의 잔이 지금 넘치고 있음을 확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 주일 예배 설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