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디라 교회에게 약속하신 권세와 새벽 별
오늘 우리가 마주한 두아디라 교회의 메시지는, 안이함에 빠진 이 시대의 교회들을 향한 주님의 날 선 검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자신을 소개하시며, 우리의 마음과 행위를 꿰뚫어 보심을 선언하십니다. 주님은 그들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시며, 특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와 달리, 이들은 믿음의 진보를 이루며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찬란한 사역 뒤에는 치명적인 병이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북이스라엘의 왕비 이세벨과 같은 거짓 선지자를 용납한 것입니다. 당시 두아디라는 상업 조합(길드)이 발달했는데, 길드에 가입하려면 '가이사는 우리의 주'라고 고백해야 했고, 이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이세벨의 가르침은 바로 이 적대적인 세상 속에서 "음행해도 괜찮다, 우상의 제물 먹어도 괜찮다"며 타협을 종용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외부의 박해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타협함으로 무너집니다. '세상이 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은 주님의 징계를 부르는 이세벨의 독소입니다. 이세벨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의 예배와 신앙 속에도 교묘히 침투합니다. 예배의 이벤트화: 예배를 '나의 기쁨과 즐거움, 위로'를 위한 잔치로 만들어, 멋진 밴드와 멀티미디어로 청중의 비위를 맞추고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시도입니다. 예배는 죄가 드러나 얼굴이 붉어지고, 통회 자복하며, 하나님의 크심 앞에 압도되어 경외감을 느껴야 하는 시간입니다. 듣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려 한다면 당장 멈춰야 합니다. 외식적인 기도: 큰 소리로 신을 부르는 것이 그 신이 살아있다는 확신이 없어 조바심 내고 남에게 과시하는 행위이듯, 소리를 지르는 기도는 이세벨의 가르침입니다. 자해적인 신앙: 새벽기도, 금식, 작정 기도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설마 하나님이 외면하시겠어?' 하는 마음으로 나의 욕망을 얻어내려는 자해 기도가 된다면, 이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토속적 사상이 교회에 들어온 것입니다. 미친 듯한 예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참된 예언이 아닌, 개인적인 특별 계시와 투시를 내세우는 '미친 듯한 예언'('나바')에 속지 마십시오.. 주님은 이세벨의 가르침에 미혹된 자들을 향해 경고하십니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지고" , "사망으로 그의 자녀까지 죽이겠다". 음행하던 침상이 병상이 되고, 죄악의 장소가 심판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남아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다 동성애를 용납해도, 다 타협해도, 끝까지 주를 섬기겠다고 말하는 적은 무리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 남은 자들에게 다른 짐을 지울 것이 없다 하시며, 다만 "너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승리하는 자에게는 놀라운 상급이 약속됩니다.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 권세" 와 "새벽 별을 주리라"는 약속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결론은 이 '새벽 별'이 바로 "광명한 새벽별"이신 예수님 자신임을 선포합니다. 최고의 복은 예수님을 잘 믿어, 그분 자신을 상급으로 받는 것입니다. 레위 지파가 땅 대신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았듯이,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주님은 자신을 주십니다.
도전하십시오! 세상을 이기고, 타협을 거부하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가진 믿음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이 길 끝에서 영광의 주님, 새벽 별 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주일 예배 설교 중에서 -